
올해 10월 말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경주에서 열린다. 정상회의인만큼 각국 정상들의 정상외교가 주를 이루겠지만, 이는 단순한 외교 행사를 넘어 전세계의 눈이 경주로 향하는 특별한 순간이고 기회이다.
국가적 사업기회 창출과 외교는 중앙정부의 역할이라 하더라도, 지방자치단체는 서울이 아닌 지방에 주어진 이 특별한 기회를 활용해서 앞으로 장기간 지역발전을 이룰 수 있는 관광홍보의 장으로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특히 세계적인 라이프스타일 변화 트렌드와 이에 맞는 매력적인 관광 콘텐츠를 알리기 위해서는 경주를 넘어 울산과 포항을 잇는 ‘해오름동맹 관광벨트’를 구축하여 세계에 제안하는 것이 필요하다.
인구구조재편, 기술의 발전, 세계적 전염병의 유행 등은 전세계인의 라이프스타일에 변화를 가져왔고, 이는 세계적인 관광 트렌드의 변화로 이어졌다. 재택근무가 보편화되면서 사람들은 일과 여행을 동시에 즐기고, 은퇴 인구는 늘어남에 따라 ‘오래 머무는 여행’에 대한 수요가 커지고 있다. ‘워케이션(Work+vacation)’ ‘한달살기’ 등은 이미 세계적으로 익숙한 관광 트렌드가 되었다.
이러한 면에서 볼 때 경주, 울산, 포항을 잇는 ‘해오름동맹’은 동남권을 세계적 관광지로 만들 수 있는 훌륭한 여건을 갖추고 있다. ‘방문지’의 개념을 벗어나 ‘머무는 곳’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면, 경주, 울산, 포항이 갖고 있는 각각의 관광요소들은 타 지역과 차별화되어 있고 또 조화롭다. 경주에서는 천년 고도의 문화와 유적을 경험하고, 울산에서는 태화강 국가정원과 고래 문화를 만날 수 있다. 포항에서는 다양한 해양 레저가 기다린다. 여기에 지역 식재료를 활용한 건강한 식단, 숲과 바다에서의 치유 프로그램을 더하면, ‘문화·자연·웰니스’를 아우르는 독창적 장기 체류형 모델이 완성된다. 관광객은 단순한 소비자가 아니라 ‘머무는 손님’으로 바뀌고, 이는 지역 식당·숙박업소·전통시장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자연스럽게 소상공인의 소득이 늘고 청년 창업에도 기회가 열린다.
세계적인 대기업과 연계한 MICE 관광객에게 제공하는 연계 관광프로그램이 갖춰진다면 자연스럽게 전세계에 구전 마케팅을 실시할 수도 있다. 신규 외국인 관광객 유치 장벽과 홍보 비용을 낮출 수 있는 여건을 갖춘 것이다.
그렇다면 APEC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정상회의 기간 세계의 언론과 대표단이 경주에 모인다. 이들에게 해오름동맹 관광벨트를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 국제 홍보관 운영, 외신 기자단을 위한 팸투어, 정상 배우자 프로그램과 연계한 문화·웰니스 체험은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행사가 끝난 뒤의 지속성도 고민해야 한다. 교통 연계가 핵심이다. KTX, 공항 등 광역교통망과 시내 교통망 간의 연계, 도시 간 교통체계를 보완해 관광객이 불편 없이 세 도시를 오갈 수 있어야 한다. 교통, 숙박, 체험을 한 번에 예약·결제할 수 있는 통합 플랫폼을 구축한다면 체류 기간을 늘리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또한 세 도시가 공동으로 해외 관광 박람회에 참여하고, 온라인 채널에서 ‘해오름동맹 관광벨트’라는 이름으로 패키지를 홍보하는 것도 좋은 방안이 될 수 있다.
해오름동맹 관광벨트는 단순한 관광 협력 모델이 아니다. 그것은 변화하는 라이프스타일과 글로벌 관광 흐름을 반영한 새로운 지역 성장 전략이며, 소상공인과 지역 주민에게는 실질적인 소득과 일자리로 이어지는 미래 자산이다.
관광은 더 이상 가볍게 소비하는 이벤트가 아니다. 그것은 건강과 쉼, 지역의 활력, 국가의 성장 동력이 맞물린 종합 산업이다. 소득 증가와 고령화, 재택근무와 은퇴 인구 확대라는 흐름, 그리고 경주 APEC이라는 국제적 계기가 동시에 주어진 지금이야말로, 우리는 해오름동맹 관광벨트를 대한민국 관광의 새로운 지도로 세상에 내놓아야 한다.
APEC은 곧 지나가지만, 그 의미는 오래 남을 것이다. 이번 회의를 단순한 외교 이벤트로 끝낼 것인지, 아니면 동남권 관광을 세계적 브랜드로 도약시키는 계기로 삼을 것인지는 우리에게 달려 있다. 지금이야말로 해오름동맹 관광벨트라는 미래 지도를 선보일 때다.
이정협 서호홀딩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