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매스컴을 접하다 보면 민초가 사는 세상은 온통 맹수가 우글거리는 아프리카 정글 한 가운데 서 있는 느낌이다. 태평양 건너 미국 트럼프는 거침없는 발언과 행동으로 국제질서를 흔들고 있다. 강자의 논리로 상대를 압박하고 세상의 중심인 양 오만 가지 칼을 마구 휘두르고 있다.
그러나 그 강한 자의 오만은 언제나 역사의 한 켠에서 커다란 균열과 상처를 남기곤 했다. 상대의 존재를 존중하는 여백이 사라지고 힘이 정의를 대신하는 순간 세상은 불안해진다. 지금 세계 곳곳이 그러하다. 갈등이 깊어진 자리에는 불신이 확산되고 약자의 목소리는 들리지도 않는다.
우리나라 국회와 자치단체 의회 역시 다르지 않다. 현재 우리 정치 풍토를 보면 거대당의 절대적 의석이 마치 면허 없는 힘처럼 휘둘려지고 있다. 국민의 다양한 목소리와 소수당의 견제는 때때로 불편한 소음쯤으로 취급된다. 법안은 합리적 토론보다는 일방적 진행으로 밀어붙이고, 비판은 반대를 위한 반대라며 외면한다. 민주주의의 핵심 정신인 다름의 공존은 사라지고 힘 있는 쪽의 독선만 부각되고 있다. 정치가 협력과 소통의 예술이 아닌 이기는 기술로 변질된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 지금 우리의 모습이다.
옛말에 ‘권불십년(權不十年)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 했다. 제아무리 무소불위의 권력이라도 결국 시간과 엄중한 민심 앞에 무릎을 꿇게 되어있다. 역사는 늘 그러했다. 오만한 제국들은 늘 무너졌고 권력이라는 두 글자에 도취한 자들은 결국 자신이 만든 성안에 고립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쉽게 그 유혹을 이기지 못한다. 힘은 달콤하고 오만은 그 힘의 그림자처럼 따라붙는다.
문제는 그 그림자가 길어질수록 빛을 잃는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 정치에 필요한 것은 더 많은 권력이 아니라 더 깊은 성찰이다. 다수의 힘으로 밀어붙이기 전에 그 힘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 스스로 묻는 용기가 필요하다. 국민은 단지 투표로 대표권을 위임한 것이지 백지 수표를 내어준 것이 아니다. 힘은 국민을 위해 사용될 때 정당성이 부여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 힘이 국민의 뜻을 외면하고 자신들의 논리와 사익을 강화하는 데 쓰일 때 그것은 곧 폭력이 된다. 이럴 때 일수록 우리 국민 한 사람, 시민 한 사람이 깨어 있어야 한다.
민주주의는 권력자만의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것이다. 세상을 바꾸는 것은 거대한 권력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자각과 성찰의 힘이다. “힘이 정의를 만든다는 착각을 버리고, 정의가 힘이 되는 세상을 만들 용기”. 이것이 지금 우리가 지켜야할 민주주의의 마지막 품격이다.
김병철 울산장애인재활협회 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