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석유화학산업 구조개편의 ‘골든타임’을 강조하며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지만, 울산 석유화학단지의 감산 논의는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S-OIL·SK지오센트릭·대한유화 등 3사는 감산 주체를 둘러싸고 끝 모를 줄다리기를 이어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울산 역사상 최대 규모인 9조 2580억원짜리 S-OIL ‘샤힌 프로젝트’가 구조개편의 최대 변수로 떠올랐다. 내년 샤힌 가동이 시작되면 감산 효과는 반감되고, 늦추자니 천문학적 투자가 헛되이 되는 딜레마에 직면한다.
4일 열린 ‘산업경쟁력강화 관계장관회의’에서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구조개편 지연을 강하게 질타했다. 그는 대산 단지를 제외한 (울산과 여수)진척이 미미한데, 지금이 마지막 기회이자 연말까지가 골든타임이라며, 자율 재편의 속도전을 주문했다.
앞서 정부와 석유화학업계는 지난 8월 협약에 따라 나프타분해설비(NCC) 생산능력을 최대 25% 감축하기로 합의했다. 이에 울산석유화학단지 3개 NCC 운영사는 에틸렌 생산능력 174만t(SK지오센트릭 66만t, 대한유화 90만t, S-OIL 18만t) 중 25%를 자율 감축할 계획이다.
그러나 ‘감산 주체와 규모’를 둘러싼 이견은 좀처럼 좁혀지지 않고 있다. 이에 3사는 추석 전 자율협약(LOI)을 체결하고 보스턴컨설팅그룹(BCG)에 자문을 의뢰했다. 12월 발표 예정인 컨설팅 결과조차 권고안 수준에 그쳐 실제 합의 가능성은 낮다.
울산 석유화학 구조개편의 최대 변수는 S-OIL 샤힌 프로젝트다. 내년 가동 시 에틸렌 생산이 연 180만t 늘어나 울산 3사 전체 생산량을 넘어선다. 이 중 48만t은 외부 판매가 필요한데, 기체상태라 장거리 운송이 어려워 다른 기업이 감산하지 않으면 시장에 풀리지 못하는 병목이 발생한다.
울산 감산 논의가 꼬이는 핵심은 여기에 있다. 감산에 나서면 S-OIL에 시장을 내주게 되고, 가동을 늦추면 9조원이 넘는 투자가 헛되이 된다. 샤힌 프로젝트가 이제 와서 구조개편의 걸림돌이자 공급 과잉을 키우는 ‘역설적 존재’로 전락한 셈이다.
울산 석유화학단지는 정부의 구조조정 압박과 기업 생존 전략이 충돌하는 최전선이다. 기업들은 경쟁력 강화를 명분으로 대규모 투자를 단행하지만, 이는 공급 축소를 목표로 하는 구조개편에 역행하는 역설적 현실을 만들어낸다. 생사의 기로에 선 기업에 자율 구조조정을 강요하는 정책의 한계를 보여주는 울산 석유화학의 현주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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