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일기]대상은 ‘3차원 입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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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대상은 ‘3차원 입체’이다
  • 경상일보
  • 승인 2025.11.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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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현국 울산 삼산고등학교 교사

동료가 그림을 보여줬다. 아이가 그린 자기 모습을 휴대폰 바탕화면으로 설정해 둔 것이었다. 그림을 보는 동료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 순간 어렸을 때 그림일기를 그리고 썼던 기억이 났다. 아이들의 그림에는 공통점이 있는 것 같다. 대상이 평면이다. 머리는 크고 팔과 다리는 선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삐뚤빼뚤하다. 아이들은 2차원 평면에 대상을 완벽하게 평면으로 표현한다. 사물에 대한 입체감을 표현하지 못해서일 것이다.

‘아비뇽의 처녀들’은 파블로 피카소가 그린 1907년 작품이다. 입체주의 미술의 시작을 알린 작품으로 평가된다. 작품은 현재 뉴욕 현대미술관에 소장돼 있다. 이 그림은 바르셀로나 아비뇽 인근 사창가 여성들을 그린 것이라고 한다. 그림에는 여러 시점이 한 화면에 공존한다. 미술 시간 입체파에 대해 배운 적이 있다. 그때 미술책에서 본 기억이 있다.

그림 속 여성들의 모습은 원근법과 무관하게 하나의 면 위에 뒤섞여 표현돼 있다. 왼쪽 여성은 그렇지 않고 오른쪽 여성들은 여러 시점이 겹쳐 있다. 그림 하단에 놓인 과일이 담긴 탁자는 위에서 내려다본 시선으로 표현돼 있다. 이 작품은 동료 화가들과의 컬렉션에서 처음 전시되었다고 한다. 반응이 부정적이어서 거의 10년 동안 대중 앞에 전시하지 못했다고 한다. 입체파는 전통 회화 표현법에 역행하는 시도였다고 평가된다. 회화의 권위와 가치에 대한 정면 도전으로 평가되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전통 회화는 2차원 캔버스 위로 3차원 대상을 담았다. 2차원 평면에 3차원의 실재를 원근법으로 표현했다. 3차원의 실재를 최대한 그대로 표현하려고 했다. 캔버스의 원천적인 특성인 2차원 평면은 고려하지 않았다. 그에 비해 입체주의는 정반대로 3차원 대상을 2차원 캔버스에 면들로 해체해서 표현했다. 그래서 2차원 ‘평면’에 3차원의 대상을 늘여 놓은 것 같다. 대상이 지닌 입체감 자체를 그대로 표현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것은 2차원 평면이라는 틀을 왜곡하지 않고 3차원 대상을 2차원 캔버스의 형식에 맞게 표현한 것이다.

전통화법과 입체파의 공통점은 모두 대상을 입체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차이점은 2차원 평면에 3차원 대상의 입체성을 담으려고 했느냐, 2차원 평면의 특성을 유지하며 3차원 대상을 해체해서 2차원적으로 담으려고 했느냐이다. 전통 회화는 대상이 입체적이지만 평면적이지 않다. 그러나 입체파는 대상이 평면적이면서 입체적이다. 입체파가 기존의 사고 체계를 부정하고 새로운 시도라고 하지만 어쩌면 입체파의 표현 기법은 화폭이라는 2차원 공간의 특성을 그대로 존중하여 대상을 표현한 측면이 있다고 볼 수도 있다.

기존의 가치체계는 중요하다. 그러나 언제나 새로운 인식이 더해진다. 중요한 것은 학교가 아이들에게 실체를 정확하게 볼 수 있는 힘을 길러 주는 것이다.

이현국 울산 삼산고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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