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의 쟁이들]자연이 낳은 재료, 온 정성과 마음 다해 흰 천에 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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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의 쟁이들]자연이 낳은 재료, 온 정성과 마음 다해 흰 천에 물들이다
  • 홍영진 기자
  • 승인 2020.10.29 21: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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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염색장 황동욱
▲ 햇빛을 받고 있는 황동욱 장인의 염색천.

1980년 경주 상선암 주지스님에게 염색 배우기 시작해
성파스님·안해표 장인 등 전국 염색장 찾아다니며 습득
수십 년간 전국 각지 장터 돌아다니며 모은 옛날 천들에
꽃·나무·흙 등 온갖 자연물 이용 옛방식 그대로 색 입혀
해 나오면 말려서 완성…쾌청·맑고 건조한 날씨가 관건


‘울산의 쟁이들’은 ‘세상이 알아주지 않아도 그저 담담하게 그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에 대한 기록이다. 울산을 기반으로 오랜 기간 전통문화 분야에 몰두하며 최고의 열정과 기량을 보여준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그 생애와 기예를 소개한다.

처음엔 그것이 염색인 줄도 모르고 그저 스님의 옷에서 나는 향기가 좋았다. 하얀 무명천을 솥에 넣고 까만 먹을 물에 타서 소금을 넣어 삶기를 여러 차례 하면 먹향이 은은하게 배인 짙은 회색 빛깔의 천이 된다. 그렇게 먹으로 색을 넣은 것을 ‘먹염’이라 한다. 황동욱 염색장과 전통 염색의 만남은 답답한 심사를 달래고자 우연히 찾아간 절에서 맞닥뜨린 먹염이 그 시작이었다.

1980년 즈음부터 경주의 상선암 주지스님에게 염색을 배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배운다는 생각도 없이 그저 스님을 도우며 울울한 마음을 풀고 싶을 뿐이었다. 그러나 자연에서 색을 뽑아 하얀 천을 고운 빛깔로 물들이는 작업에 장인은 점차 마음을 뺏겼고, 이후 통도사의 서운암 성파 스님께 쪽염을, 부산시 무형문화재 제17호 화혜장 안해표 장인에게 발효쪽과 오배자, 괴화를 이용한 염색을 배우고, 이후 전국의 염색장을 찾아다니며 온갖 자연물을 이용한 염색법을 습득했다. 그렇게 염색에 빠져 산 세월이 어느덧 40년이다.

▲ 염색한 천을 널고 있는 황동욱 염색장.

천연염색은 꽃·나무·풀·흙·벌레 등 자연에서 얻은 재료로 천을 물들이는 일이다.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식물성 염료를 주로 사용하였다. 청색은 쪽에서, 붉은 색은 홍화·소목·꼭두서니, 황색은 치자·울금·괴화 등에서 얻었다. 천연염색의 과정은 염료가 되는 자연물을 채취하고, 거기서 염료를 추출한 뒤, 매염제와 염료를 여러 번 반복하여 수세하고, 이를 건조시키는 순서로 이루어진다.

황동욱 장인에게 전통염색이란 단순하다. 전통 천에 전통 방식 그대로 하는 것. 그러나 조금만 생각해보면 이는 이미 지나가 버린 시간을 되돌리겠다는 생각만큼이나 무모한 도전임을 알 수 있다. 그에게 이 ‘전통 그대로’라는 것은 단순히 전통을 따라하는 일이 아니다. 전통 그 자체가 되는 것이다. 그의 염색 작업의 첫 번째는 전통 천을 구하는 일이다. 그가 말하는 전통 천은 옛날 할머니들이 물레와 베틀을 돌려 옛날 실로 짠 옛날 그 천이다.



“촌에 장이란 장은 다 다녔죠. 시골 장에 가면 할매들이 팔러 나와요. 옛날 짜놨던 거 묵혀 놨던 걸 들고 나옵니다. 죽을 적에 입을라고 했는데 이제는 필요 없다 하시면서 팝니다. 또 어른들이 돌아가시고 가족들이 장롱 정리하면서 나오는 거, 그걸 사 모으러 돌아 다녔습니다. 전국 여기 저기 온갖 장터들을 돌아다니며 사 모았죠. 무명과 삼베, 삼베 중에서도 영남에서 나는 영포, 안동포, 전라도에서 나오는 돌실나이, 강원도의 강포, 한산에서는 모시, 그리고 한올은 명주, 한올은 모시로 짠 춘포라는 게 있습니다. 덥지도 춥지도 않아 임금님 속옷을 만드는 천입니다.”

지난 수십 년간 전국 각지의 장터를 돌아다니며 모은 옛날 천들이 그의 염색 작업의 가장 기본 바탕이 된다. 그리고 이제 여기에 오로지 자연에서만 얻은 원료로 옛 사람의 방식 그대로 색을 만들어 입히는 것이 그의 염색 작업이다.

▲ 자연의 색을 입힌 황동욱 장인의 염색천.


“붉은 색을 한다면, 홍화 꽃을 두드려 홍화 떡을 만들고 그걸 말려 물에 불려서 물을 걸러 내고, 거기에 콩대를 태운 잿물을 부어 가고 오미자 물로 신국하는 전통 그대로의 방식대로 합니다. 콩대를 태운 재가 매염제입니다, 색이 도망가지 않고 밝게 나게 하는. 콩대를 태워 재를 만들어야 하는데 요즘은 불을 지르는 것이 어렵습니다. 가을철 이때 맑은 색을 낼 적에 딱 준비 해놓고 태우죠. 1년치 붉은 색 염색을 가을에 다 해버리죠. 내년에 홍화 얼마쯤 해야겠다 싶으면 홍화떡도 미리 만들어 놓거든요. 준비를 해 놓고 가을 되면 이거 하고, 봄에는 무슨 색 하고, 겨울에는 검은 색, 계절마다 하는 색깔이 틀립니다.”



그러나 전통 천과 전통 방식은 과정의 절반일 뿐이다. 염색일을 마무리 짓기 위해서는 하늘의 도움이 필요하다. 흰 천에 색을 입히는 작업은 햇빛과 날씨와 바람이 허락해야 하는 일이다.



“새벽에 해 뜨기 전까지 염색 작업을 마치고 물을 다 빼 놨다가 해가 나오면 바로 너는 거예요. 햇빛하고 엄청 관계가 있습니다. 아무리 준비가 잘 되어도 구름이 끼고 습도가 높으면 제대로 나오지 않습니다. 아주 쾌청한, 맑고 건조한 날씨가 중요합니다. 제일 좋을 때는 깨끗하게 정련해 놓은 천을 첫물에 넣을 때 색깔이 사르륵 스며드는 걸 보면서 과연 저게 끝까지 내가 바라는 색이 나올 것인가, 기도하는 마음으로 보는 순간이죠. 물이 쫙 빨려 들어가는 걸 보며 제발 이번에는 지난 번 보다 더 좋은 색이 나오기를 기도하면서. 제 마음에 물어보죠, 과연 이거 이상의 색이 더 나올 수 있는가, 그러면 이것도 좋은데 다음에는 조금 더 잘 해보고 싶다고 해요, 만족이 없어요. 내 마음이 흠뻑 들어가 있다면, 정말 멋진 붉은 색, 검은 색이 될 꺼라 믿는 거죠.”



본디 우리나라의 천을 만드는 실들은 모두 하얀 색이다. 무명의 재료인 목화솜이 하얗고, 삼베 껍질은 누르스름하고, 명주의 재료인 누에고치는 우유 빛깔이다. 모시 또한 하얗고 노르스름하다. 처음 자연에서 얻은 그 순수한 하얀 색에 쪽의 푸르름과 홍화의 붉음, 괴화의 황금빛, 지초의 보랏빛을 담고 싶다는 열망이 오색빛깔로 곱게 물든 천을 만들어내었다. 자연이 낳은 재료에 물과 햇빛과 바람이라는 자연의 뜻을 간절히 바라며, 사람의 온 정성과 마음을 다하는 일, 그것이 황동욱 장인의 염색일이다. 오늘 새벽도 그는 동 트는 순간의 햇살에 비친, 하늘이 허락한 그 색을 기다리며 붉은 색의 물에 손을 담근다.

 

▲ 노경희 전문기자·울산대 국어국문학부 교수

글= 노경희 전문기자·울산대 국어국문학부 교수

사진= 안순태 작가

표제= 서예가 김중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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