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앞날 주도하는 젊은이들
고난·역경 극복해 나갈수 있어
매년 이맘때쯤이면 짧게는 2~3년 길게는 4~6년간의 학업을 마치고 교문을 나서는 학생들의 설레임으로 교정이 가득 찬다. 30여년 전의 대학 졸업식 풍경은 참으로 작금의 모습과 대비된다. 교문앞에 장사진을 친 꽃다발 상인들, 인산인해의 축하객, 가족들 삼삼오오 모여서 사진을 찍고 사회로의 새출발을 축하하는 모습들로 꽉 차있다. 영어로 졸업을 ‘commencement(시작)’라고 하듯이 졸업은 또 다른 삶의 여정을 출발하는 것이다.
조선시대 성균관 학생들은 300일 이상 공부에 열정을 쏟으면 문과 초시에 응시할 자격을 부여 받았다. 입학은 엄격하고 까다로웠지만 재학기간이나 졸업일은 따로이 정해진 게 없어서 과거에 합격한 날이 곧 졸업이었던 것인 셈이다. 근세까지 이어진 서당에서의 졸업식은 요즘에는 거의 사라졌지만 굳이 일컫는다면 ‘책씻이(책걸이)’ 정도로 얘기할 수 있겠다. 졸업이 입학보다 더 큰 의미를 부여받기 시작한 것은 근세기에 이르러 현대식 학교가 설립, 운영되면서 의식으로서 입학식과 졸업식을 행하게 되었는데, 졸업식의 규모나 의미가 보다 크게 부여되고, 졸업증서가 하나의 자격으로서 인증효과를 보임과 동시에 다음 단계의 교육기관으로의 편입이나 사회진출로의 중요한 수단으로 대두되면서이다.
한때 국내에서도 1980년대 초에 졸업정원제를 운영한 적이 있다. 대입경쟁의 격화로 과열과외, 재수생 누적, 인성교육의 부재 등의 문제로 대입 입학정원을 대폭 늘리고, 대신 졸업을 까다롭게 제한함으로써 대학에서의 면학분위기 조성과, 학생의 정치참여를 제어하는 또 다른 목적도 있었음직 하다. 그러나 국가의 개입으로 입학한 학생들을 일률적으로 20~30%를 탈락시키는 문제, 대학별 특성과 교육이면 등을 전혀 반영하지 않은 기계적인 졸업정원 조정문제 등으로 유야무야 되었고, 10년도 안되어 폐지되고 말았다. 대학 입학정원만 크게 늘려놓은 상태로 말이다.
산업화, 개발시대를 관통하면서 한때는 대학을 졸업한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큰 자격증으로 매겨져 사회진출에 지렛대 역할을 톡톡히 했다. 그래서 우골탑이라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대학에 보내려 했고, 정말 고등교육을 통하여 국가의 산업이 한단계 도약하는 전기가 되었음은 부인하기 어렵다. 고도 성장기에 대졸자의 취업은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물론 취업에의 질과 눈높이에 정도에 따른 만족의 차이는 있었을지언정 말이다.
요즘 두 가지가 대학문을 나서는 젊은이의 어깨를 무겁게 잡아 당기고 있다. 하나는 코로나로 거의 1년의 대학생활을 그야말로 생전 겪어보지 못할 경험을 하게 된 지난 한 해였다. 보통 4학년 1년간 심화학습과 경험 및 현장중심의 실습, 인턴십 등의 프로그램으로 꽉찬 한해를 보내고 교문을 나서는데, 코로나 와중에 고군분투를 벌였으나 많은 부분이 틀어지고 엉켜버렸다. 또 다른 하나는 여러 복합적인 연유로 참으로 좋은 일자리가 많지 않은 현실이다. 고도성장이 멈추고, 4차산업혁명의 물결이 사회 곳곳에 스며들고, 신산업의 부각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 참으로 심각한 상황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졸업을 앞둔 청년들에게 힘내라는 말을 아낄 수는 없다. 어느 사회든 그 시대의 가까운 앞날을 주도하는 세대는 젊은이였다. 개인의 역경, 사회적 고난, 시대적 불운, 이 모든 것 또한 극복해 나갈 수 있고, 또 그래야 한다. 그래서 역사는 쉬이 단절되지 않고 진보하는 것이다. 졸업, 다시 새로운 시작이 기다리고 있다. 남호수 동서대 융합전자공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