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시론]반칙이 통하지 않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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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시론]반칙이 통하지 않는 사회
  • 경상일보
  • 승인 2021.03.15 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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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곳곳 불법적 반칙카드 횡행
공정세상 꿈꿨던 서민들 자괴감
일벌백계의 원칙 제대로 보여야
▲ 강학봉 울산 사랑의열매 사무처장

땅 짚고 헤엄치는 건 식은 죽 먹기만큼이나 쉬운 일이다. 세상 사는 일이 그만큼 쉽다면 누가 애써 노력을 할까. 살면서 필자가 얻어야 할 것들은 땅을 짚고 헤엄을 칠 수 있는 곳에 있지 않았고, 그걸 쉽게 얻을 수 있는 ‘찬스’도 없었다. 원하는 것은 항상 깊은 바다에 떠 있고, 그곳에 가 닿을 방법은 온몸을 허우적거리며 헤엄을 치는 도리밖에 없었다. 부모의 보호를 벗어나 스스로 밥벌이를 해야 하는 이십대부터 아이들을 교육하면서 집 한 칸 마련할 때까지. 대한민국 보통 서민들의 삶이 나와 다를 바 있을까.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행보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온 국민이 공분을 사고도 남을 일이다. 뉴스가 나올 때마다 그동안 집칸이나 마련하려고 애를 쓰며 살아온 날들이 허탈해지며 입맛이 쓰다. 거듭 내놓는 정부의 안정화 정책에도 집값은 천정부지로 치솟고, 그걸 보며 주택마련의 꿈에서 점점 멀어졌다. 게다가 LH는 부동산정책을 입안하고 집행하는 핵심 기관이 아닌가.

흔히들 LH가 땅값을 다 올려놓고 민간업자에게 비싸게 분양하여 성과급 잔치를 한다고 지적할 때만 해도, 준시장형 공공기관이라 직원들 급여도 줘야 하고 경영도 해야 하니 그럴 수 있겠다며 이해하려 했다. 내가 알기로는 그 기관은 직원들이 적지 않은 보수를 받는, 이른바 ‘신의 직장’으로 알고 있다. 그들이 서민들이 집칸이나 마련하려고 믿고 의지하는 곳이라는 걸 망각하고, 자신의 배만 불리는데 급급했다는 것에 어찌 배신감이 들지 않겠는가.

과거 관행에서 탈피하고 집중된 권력을 분산하고 상식이 통하는 사회를 만들겠다던 정부였다. 투명한 사회를 만들겠다던 정부였다. 물론 그러기 위해 노력을 하는 중이라는 것도 안다.

그러나 기회를 얻은 듯 일삼는 반칙으로 곳곳에서 구린내가 발목을 잡으니, 변화의 걸음은 더디고 국민의 입에선 아우성이 절로 나온다. 곳곳이 공공의 적이다. 믿었던 도끼에 발등을 찍힌 듯 속이 쓰리다.

법과 규칙은 최소한의 상식 내에서 만들어진다. 지키는 건 각자의 양심에 달려있다. 대부분은 그 정도를 지키며 살아간다. 반면에 교묘하게 규칙을 악용하거나 반칙을 일삼는 이들이 있다. 문제는 모르면 묻히고 알아도 위기를 모면하면 그만인 세상이 되어버린 것이다.

‘찬스’의 유혹은 달콤하다. 일명 특혜라는 이름으로 ‘아빠찬스’ ‘엄마찬스’를 쓰며 반칙을 일삼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재벌가의 자녀들이 총수를 대물림하고, 힘 있는 정치가의 아이들은 군 면제도 쉽게 받고, 유명 교수의 자제들은 우수한 학점으로 포장을 하고, 유명 연예인의 자녀나 가족은 쉽게 브라운관을 차지한다. 모든 것을 대물림하는 사회가 된 것이다. 부와 권력, 학력과 명예, 평생에 단 한 장의 ‘찬스’도 얻지 못한 채 태어난 사람들은 스스로 모든 걸 얻어내야 한다. 그러나 그게 가능한가. 소위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도 전설이 되어버린 세상에. 없는 것을 대물림받은 없는 자가 스스로 기회를 얻는 건 하늘의 별 따기만큼 쉽지 않은 사회가 되어버렸다. ‘찬스’카드를 지닌 자는 땅을 짚고 헤엄을 치지만 그러지 못한 서민들은 잠수하지 않기 위해 발버둥을 쳐야 사는 사회, 과연 공정한가 하는 자괴감이 든다.

‘무관용 원칙으로 일벌백계하고 분골쇄신의 마음으로 환골탈태하겠습니다.’

법을 어기며 반칙 카드를 쓴 이들이 하는 말이다. 그리고는 구멍으로 숨어드는 뱀처럼 꼬리를 감추는데 급급하거나 시간을 끌며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린다. 반칙으로 받은 이득에 비해 책임이 너무 가벼운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시기적으로 재·보궐선거를 앞두고 정치 쟁점화되었으니 아마도 가볍게 넘어가지 못할 것이다. 이번에 일벌백계의 무관용 원칙이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줘야 할 때인 것은 틀림없다. 법치주의 국가, 법이 제대로 지켜지는 국가가 되려면 ‘찬스’가 횡행해서는 안된다. 이제는 투명해야 할 때다.

강학봉 울산 사랑의열매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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