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산행을 좋아한다. 산악회 회장을 20년 가까이 맡고 있으며, 거의 매주 산행을 한다.
산행은 사계절이 다 좋지만, 나는 봄날 산행을 특히 좋아한다.
추위는 가고 꽃이 피려는 때에 차가운 물에 발을 씻는 즐거움이란 그 무엇과도 비교하기 힘들다. 왼종일 쌓아온 발의 힘겨움을 찰나에 씻어 주기도 하고, 내 마음속에 덕지덕지 붙어 있는 번뇌들을 덜어주기도 한다.
탁족(濯足)은 산간 계곡의 물에 발을 담그고 더위를 쫓는 일이다. 탁족은 전통적으로 선비들의 피서법이다. 발은 온도에 민감한 부분이고, 특히 발바닥은 온몸의 신경이 집중되어 있다.
발만 물에 담가도 온몸이 시원해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흐르는 물은 몸의 기(氣)가 흐르는 길을 자극해 주므로 건강에도 좋다. 탁족은 피서법일 뿐만 아니라 정신 수양의 방법이기도 하다. 옛 사람들은 산간 계곡에서 탁족을 함으로써 마음을 깨끗하게 했다.
탁족이라는 용어는 전국시대 초나라 정치가 굴원(屈原)이 <어부사(漁父詞)>에서 ‘창랑의 물이 맑으면 갓끈을 씻고 창랑의 물이 흐리면 발을 씻겠네(滄浪之水淸兮 可以濯吾纓 滄浪之水濁兮 可以濯吾足)’라고 한 데서 유래했다.
이 말은 <맹자(孟子)>에도 나온다. ‘세상이 흐리면 그 흐림을 따르지 말고 흐림에서 벗어나 있겠다’는 의미이다. 옛 선인들의 출처관(出處觀)이 담긴 말이기도 하다.
따라서 탁족은 과거 우리나라 선비들의 관심의 대상이었다. 탁족을 소재로 한 이경윤의 고사탁족도(高士濯足圖), 이정의 노옹탁족도(老翁濯足圖), 최북의 고사탁족도(高士濯足圖) 등이 한결같이 간결하고 고답적인 분위기임은 이를 증명해준다.
씻는다는 것은 정화(淨化)이다.
정화는 불순하거나 더러운 것을 깨끗하게 하는 것이다. 언제나처럼 열심히 씻자.
다만 몸의 때만 씻지 말고 마음의 때도 씻자. 요 임금이 만년에 천자의 자리를 맡기려고 했을 때 귀를 씻고 도피했다는 허유의 태도가 그리워지는 때이다. 송철호 문학박사·인문고전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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