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일기]개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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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개똥
  • 경상일보
  • 승인 2021.03.23 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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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미옥 울산고운중 교사

권정생의 ‘강아지똥’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야기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하는 까닭은 내 경우에 이야기를 읽는 동안 마음이 절로 순해지기 때문이다. 조마조마했던 마음이 편해지고 걱정하던 마음도 스르르 풀린다. 그 자리에 고마움으로 가득 차오른다. 어디라고 할 것 없이 그냥 엎드려 절하고 싶어진다. 세상천지가 강아지똥이 피워올린 노란 민들레 빛으로 환하게 변한다.

노란 민들레가 피어있는 것을 보면 잠시 멈추어 바라보는 버릇이 생겼다. 어쩌면 강아지똥이 있을지도 몰라. 잠깐이라도 숨을 가다듬고, 스며들어 있을 강아지똥의 바람을 생각해보는 것이다. 빗물에 녹아 흙 속으로 사라지며 행복해하던 강아지똥의 마음도 짐작해본다. 마치 내가 강아지똥인 것만 같다. 정말 행복하다. 티끌 한 점 없이 온통 기쁘다.

우리 속담에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는 말이 있다. 평소에 흔하던 것도 막상 긴하게 쓰려면 구하기 어렵다는 것을 비유적으로 가리키는 말이다. 개똥은 흔했다. 그러니 아무 생각 없이 걷다가 밟고 만다. “오늘따라 재수 더럽게 없네. 어느 집 개새끼가 여기다 똥을 함부로 갈겨 놨노?” 이러면서 흙에다 신발을 문질러 대면서 묻은 똥을 없애려 애쓴다. 고약한 냄새라도 나는 것은 아닌지, 신을 바꿔 신고 나서야 하는지, 바지자락 어디라도 안 묻었는지 살피게 한다. 아무 생각 없이 길을 걷던 스스로를 돌아보게 한다.

개는 사람 곁에서 사람에게 헌신하며 살았지만, 그에 마땅한 대접은커녕 오히려 푸대접받았다. 어떤 집에서는 부지깽이로 두들겨 맞는 신세였고. 아이의 속상한 마음을 알아주던 동무로 함께 살다가도 복날이 되면 몸보신을 위해 동네 음식이 되어야 했다. 개의 신세가 이 지경이니 그 개가 눈 똥은 말해 무엇하겠는가.

권정생 선생님은 동화 제목을 강아지똥이라 했다. 개똥이 아니라. 그 똥은 범 무서운 줄 모르는 하룻강아지가 누었을 것이다. 하룻강아지는 세상이 만들어놓은 그 어떤 틀에 대해 하나도 모르는 순진한 눈을 하고, 의심에 차서 세상을 향해 계속 질문을 해댈 것이다. 왜요?

오늘 아침, 첫 시간 십오 분 정도 아이 둘 셋과 교사 한 사람이 짝을 이뤄 봄볕 쐬기 산책을 한다. 양옆에 한 아이씩 팔짱을 끼고 걷는다. 운동장 잔디가 부드럽다. 맨발로 걸어보자 했다. 묵은 잔디 뿌리에 파릇한 새순이 올랐다. 군데군데 토끼풀이 포르스름하다. 꽃다지도 조그맣게 얼굴을 내밀었다. 봄바람이 더할 나위 없다. 아침 볕이 등으로 든든하게 내린다. 다시 돌아서 걷는다. 배 내밀고 해를 품는다. 옆에서 가만 걷던 송이가 ‘아 눈부시다’ 한다. 가만히 있지 못하고 내가 자꾸 묻는 말에 두 아이는 심심한 대답을 했다. 세상이 생기를 되찾고 있다. 어디쯤 민들레도 싹을 내밀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러니 강아지똥을 아이들과 읽어야겠다.

신미옥 울산고운중 교사

(외부원고는 본보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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