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 마시는건 인간의 원초적 욕망
관계 회복·소통의 메신저 역할도

코로나 거리두기로 혼밥이 늘어나고 있다. 가족들간에도 활동 시간이나 생활 리듬이 다르면 혼밥을 하게 된다. 사무실에서도 점심을 혼자 먹게 되는 경우가 많아 좀 답답하다. 대화하며 즐겁게 먹어야 좋다지만 식사중 대화는 타액의 비산 때문에 방역에 나쁘니 어쩌랴. 어릴 적 들은 ‘밥 먹을 때 말하지 말고 먹어라’는 어른들 말씀이 주효한 때다. 어떻든 음식과 식사는 계속된다.
중국 고전 예기에 ‘음식남녀 인지대욕존언(飮食男女 人之大慾存焉)’이란 글이 있다. 먹고 마시고 남녀간에 사랑하는 일은 원초적 욕망이라는 뜻이다. 인간의 본성과 욕망에 대한 존재론적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대만 이안 감독의 영화 ‘음식남녀’는 십수년전 부인을 먼저 떠나보낸 홀아비인 유명호텔 요리사 주사부와 각자 사연을 갖고 자유로운 삶을 살아가는 세 딸에 대한 이야기다. 딸들은 자신들을 위해 일요일마다 요리를 해주는 완고한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하는데 요리사로서 맛과 삶의 의미를 잃어가던 주사부는 딸의 친구인 이혼녀의 어린 딸을 위해 음식을 만들어 도시락을 계속 싸주면서 점차 의미를 찾고 딸들과의 소통을 복원한다. 음식은 인간의 기본적 욕망임과 동시에 관계 회복의 메신저다.
필자는 중학교 졸업 이후 부모님 계신 고향 울산이 아닌 타지에서 공부하다 보니 하숙 생활을 많이 하였다. 수십년전으로 기억이 아득한 고교 시절 대구 하숙집 친구들이 지금도 모이면 맛있는 반찬을 앞에 놓고 좀 더 먹겠다고 은근히 다투었던(!) 추억을 떠올리며 웃곤 한다. 지방 근무시 가족과 떨어져 혼자 지내면서 주말부부로 살 때에도 무엇을 어떻게 먹을지가 과제였다. 먹는 것을 둘러싼 이야기는 재미있고 늘 근원적이다. 음식은 곧 삶이다.
예전에는 남자가 부엌에 들어가면 좋지 않게 보았지만 요즘은 세태가 바뀌었다. 요리 잘 하는 남자가 남편감으로 인기있다고도 한다. 원래 먹을 것을 공급하는 일이 남자의 역할이므로 요리가 남자에게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가끔 혼자 집에서 아내가 만든 음식을 챙겨 먹다 보니 요리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토마토스튜를 요리해 먹고 싶은 욕구가 생겼는데 평소 토마토나 토마토로 만든 요리를 좋아하다 보니 그런 것 같다. 주말에 냉장고에 있는 재료를 챙기고 몇가지 재료는 직접 구입하여 토마토스튜 요리를 만들어 보았다. 인간은 늘 호기심을 먹고 사는가 보다.
음식은 모양, 색깔, 맛과 냄새가 삼위일체로 갖추어져야 풍미가 완성된다. 레시피는 인터넷에 있다. 프라이팬에 버터로 양파와 마늘을 살짝 볶은 다음 토마토 양송이버섯 당근 감자 등의 야채를 넣고 다시 볶고, 후추에 절여 버섯가루에 저민 쇠고기를 넣어 조금 익힌 후 홀토마토 통조림과 치킨스탁 등 소소를 월계수잎과 함께 넣고 물을 부어 끓여낸다. 걸쭉한 토마토 수프에 쇠고기 살코기와 감자 당근이 씹히는 식감은 일품이다. 이미 손질된 재료와 양념을 넣고 단순히 끓이거나 볶는 것은 쉬울지 몰라도 처음부터 재료를 다듬고 소스나 양념을 준비하여 볶고 지지는 요리 과정은 쉽지 않다. 음식 만드는 아내의 수고를 새삼 이해하게 된다. 가끔 요리할 때 옆에서 막내 아들이 신기한 듯 지켜보면서 간혹 간이 맞는지 충분히 익었는지 맛을 봐주고 타지 않게 저어주면 도움이 된다. 협동과 소통의 순간이다. 음식은 만든 사람 스스로가 먹을 때보다 타인이 맛있게 먹어 줄 때가 더 좋은 것 같다. 몇번 해 보니 완성도가 높아졌다. 이제 새우 오징어 홍합 등 해물과 올리브유 마늘 양파 토마토 쌀 등으로 스페인 빠에야 요리도 시도하고 있다. 사람은 진화하는 동물임에 틀림없다.
음식은 인간의 대욕을 넘어선다. 인간사 디테일에서 음식은 관계와 소통을 회복하고 사랑을 전달해 주기도 한다. 언젠가 친구들을 초대하여 직접 요리한 음식을 함께 먹으면서 품평받는 상상을 해 보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박기준 전 부산지방검찰청 검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