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철호의 反求諸己(12)]베풀지 않는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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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철호의 反求諸己(12)]베풀지 않는 사랑
  • 경상일보
  • 승인 2021.04.15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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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철호 문학박사·인문고전평론가

자유, 평등, 공정, 희망, 나눔, 인권 등은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듣는 말이다. 그런데 세상에는 자유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 불평등 때문에 힘들어하는 사람, 희망 대신 절망을 부여안고 살아가는 사람, 많아서 버리는 사람과 없어서 굶주리는 사람, 인권을 박탈당한 사람들이 차고 넘친다. 세상에 가장 흔한 말 중에 ‘사랑’이 있다. 그런데 세상에 사랑이 흔하지는 않다. 흔한 만큼이면 세상은 지금보다는 아름다웠을 것이다. 세상에 사랑은 많은데 정작 사랑이 적은 이유는 무엇일까?

무수히 자행되던 전쟁으로 인해 살기가 무척 힘들었던 시대가 길게 이어지던 때가 있었다. 그런 시대에 줄곧 ‘사랑’을 외친 사람이 있었다. 춘추와 전국의 경계 즈음에 살았던 묵적(墨翟)이 바로 그 사람이다. 묵자는 세상에 혼란이 발생하는 원인을 바로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지 않는 데서 찾았다. 공동체의 성원들이 서로 사랑하기만 한다면 혼란은 종식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래서 나온 것이 겸애이다. ‘겸애’는 ‘차별이 없는 사랑’을 의미하며 실천을 전제한다. 묵자에게 있어서 차별 있는 사랑, 실천하지 않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다.

그런데 묵자가 말한 겸애라는 개념 속에는 공리주의적 성격이 들어있다. 묵가의 사랑은 단지 아끼고 사랑하는 감정을 넘어선다. 묵가에게 있어 누구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을 물질적으로 이롭게 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래서 ‘겸애’는 항상 ‘교상리(交相利)’라는 표현과 관련해서 사용한다. 묵자는 군주로서 백성을 사랑한다는 것은 단순히 그들을 불쌍하게 여기는 마음만으로는 완성될 수 없다고 하였다. 반드시 굶주린 자에게 먹을 것을 주어야 하고 추운 자에게 옷을 주어야 하며, 노동이나 병역으로 지친 자는 쉬게 해 주어야 한다고 했다.

철학사적으로 묵가가 중요한 이유는 그들이 차별적인 사랑을 강조했던 유가들과는 달리 인간 사이의 차별 없는 사랑, 말과 감정을 넘어 실제로 베푸는 사랑을 역설했다는 점이다. 카를 야스퍼스(Karl Jaspers)는 “어중간한 철학은 현실을 저버리지만 완전한 철학은 현실로 인도한다.”라고 했다. 철학의 기반이 현실에 있음을 잘 설명해 주고 있는 말이다. 배고픈 아이를 보고 단지 사랑을 외치거나 가슴 아파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다. 참된 사랑은 배고픈 아이에게 식은 밥이라도 한 숟갈 베푸는 것이다. 송철호 문학박사·인문고전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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