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수환의 이어쓰는 울산史에세이]백결이 신라충신 박제상의 아들이라는 주장은 역사왜곡
상태바
[송수환의 이어쓰는 울산史에세이]백결이 신라충신 박제상의 아들이라는 주장은 역사왜곡
  • 홍영진 기자
  • 승인 2021.05.14 01: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삼국사기> 백결선생 열전, ‘백결선생은 어떤 사람인지 모른다’ 했다.

디지털양산문화대전 <박문량>조에
‘신라의 음악인으로 세칭 백결선생
야사와 영해박씨대동보에 전하길
박문량은 신라충신 박제상의 아들
이름은 효원, 호는 백결’이라 서술

백결이 박제상 아들이라는 기록은
단구박씨세적 거쳐 양단세적이라는
영해박씨 가승 통해 처음으로 등장
근거로 화동인물총기·화해사전 들어

출처 안밝힌 야사와 영해박씨 족보는
사료로서의 객관성이 부족하고
삼국사기·삼국유사 기록된 자료에는
박재상의 아들에 대한 언급 전혀 없어
사료의 무비판적 적용에 주의 필요


<삼국사기>에 실린 신라 눌지왕 때 박제상이 일본에 들어가 왕의 동생 미사흔(미해)을 구해낸 후 왜왕에게 항복을 거부하고 순절한 이야기는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 충신의 죽음에 가탁하여 그의 아들을 등장시켜 역사를 왜곡한 사례가 있어 주의를 요한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이 주관한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이하 한국대전) 중 디지털양산문화대전(이하 양산대전) ‘박문량(朴文良)’조는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박문량은 삼국시대 신라의 악인(樂人)이다. 세칭 백결선생(百結先生)이라 하는데, 방아타령을 지어 그 아내를 위로했다는 이야기로 유명하다. 야사(野史)와 영해박씨대동보에 ‘박문량은 신라 충신 박제상의 아들이고, 이름이 효원(孝元)이며, 호는 백결이라고 전한다. 신라 실성왕 13년(414)에 출생하여 5세 때 누님에 의하여 성장했고, 자비왕 때 이작찬 예부시랑에서 대령군(大寧君)으로 책봉되었다’했다.

▲ 이만도의  서문, ‘삽량주 간의 아들 백결’ 대목이 있다.
▲ 이만도의 서문, ‘삽량주 간의 아들 백결’ 대목이 있다.

 


디지털양산문화대전의 역사왜곡

박제상의 아들이 박문량(또는 박효원)이고, 그가 방아타령을 지은 백결선생이라는 것이다. 양산대전이 최근 한국대전에 등재되었으니 오늘의 양산지역 역사문화를 집대성했다 해도 좋을 것이다. 그런데 이 논지의 근거로 제시한 자료는 이름을 밝히지 않은 ‘야사’와 한 문중의 족보이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도 ‘영해박씨 족보에 백결에 대한 상세한 기록이 보이는데, 그의 이름은 박문량이며, 414년(실성왕 13)에 신라 충신 박제상의 아들로 태어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하고 참고문헌으로 <삼국사기>와 <영해박씨세헌>을 들었다. 야사는 출처가 분명하지 않아 역사 연구의 사료가 될 수 없다. 족보는 많은 경우 사료로서의 객관성을 담보할 수 없는데, 조선 후기에 여러 가문들이 선조의 생평을 과장하거나 분식하여 실었다는 사실은 이미 통설이 되어있다.



박제상 아들이 백결이라는 주장은 타당한가?

<삼국사기> 박제상열전에는 ‘눌지왕이 그의 사망 소식을 듣고 애통해 하면서 대아찬을 추증했다. 가족에게는 후한 상을 내리고 미사흔으로 하여금 둘째 딸에게 장가들게 하여 보답했다’고 기록했다. 그러나 박제상의 아들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다. <삼국유사>’ 내물왕·김제상조에도 ‘미해(미사흔)가 일본에서 돌아오니… 왕이… (제상의)처를 국대부인에 봉하고 딸을 미해의 부인으로 삼았다’거나 ‘딸 셋이 있었다’ 했을 뿐 역시 아들에 대해서는 기록하지 않았다. 박제상에게 아들이 없었다는 뜻이다.



백결은 어떤 인물인가?

<삼국사기> 백결선생열전에는 ‘백결선생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없다.(不知何許人) 낭산 아래에 살았는데 집안이 몹시 가난해서 옷을 백 군데나 기워 마치 메추리를 매단 것과 같다 해서 사람들이 동쪽 마을의 백결선생이라 불렀다’ 했다. 백결은 이처럼 ‘不知何許人(부지하허인)’이었으니 박제상의 아들이 아니다. 이 기록이 내포한 뜻은 백결은 가난 속에서도 예술혼을 간직한 훌륭한 음악인이라는 사실이다. 그가 명절에 음식을 준비하지 못하는 아내를 위해 가야금으로 방아찧는 소리를 연주해 방아악(樂·대악)으로 전해졌음은 모두가 알고 있다. 양산대전에는 이를 방아타령이라 했는데, 이는 오늘날의 경기민요이며 백결의 대악과는 다르다.



호 백결, 직급 이작찬, 관직 예부시랑이라는 허위

백결이 박문량의 ‘호’라 하지만 신라 초기에는 호를 가진 사람이 없었다. 호는 중국에서도 당나라 때 시작해서 송나라 때 보편화 했으니 신라 초기에 호를 쓴 인물이 있을 리 없다. 통일신라 최말기 최치원이 고운(孤雲) 또는 해운(海雲)이라는 별호를 썼는데, <삼국사기>에는 이를 호가 아닌 자(字)라 했다. 또한 신라에는 박문량이 임명되었다는 이작찬이란 직급과 예부시랑이란 관직도 없었다. 더구나 대령군으로 책봉했다는 봉군법(封君法)도 고려 초기부터 나타났으니 신라 초기의 박문량이 봉군되었을 리 없다. 이처럼 양산대전에서 서술한 백결은 모두가 사실이 아니다.

이런 혼란이 어디서 비롯했는가? 백결에 대한 유일한 기록 백결선생열전에 나타나지 않은 사실들은 필자들이 참고했다는 영해박씨의 족보에서 찾을 수 밖에 없다. 국립중앙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는 <영해박씨세헌>은 표지는 ‘충렬공세헌’이라 했는데, 충렬공은 박제상이며 영해박씨의 시조라 한다. 여기에 규장각직제학 조성하가 1869년(기사년)에 찬술한‘송국헌공행장’에 실려있다. 송국헌은 영해박씨 박문병의 호이다. 그러므로 <영해박씨세헌>은 1869년에 간행한 것이다. 여기에는 박제상의 사적은 실었지만 박문량에 관해서는 언급이 없다. 당시까지 박제상의 아들은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박문량·백결이 박제상의 아들이라는 최초의 기록은 영해박씨의 <양단세적(良丹世蹟)>에서 찾을 수 있다. 양단은 영해의 별칭이며, 세적은 선조들의 행적에 대한 기록이다. 이 세적은 1910년에 편찬했는데, 국립중앙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다. 향산 이만도(響山 李晩燾, 1842~1910)가 서술한 서문이 있고, 권1에 ‘충렬공사적’과 ‘백결선생사적’이 있다. 이전에 없던 ‘백결선생사적’이 이때 새로 등장한 것이다.

이 두 사적이 근거한 자료는 <삼국사>, <삼강행실>과 ‘화동인물총기(話東人物叢記)’, <화해사전(華海師全)>이라 했다. <삼국사>는 <삼국사기>를 말하며, 여기에 백결이 실렸음은 전술했다. 조선 세종조에 간행한 <삼강행실도>에는 박제상이 ‘제상충렬(堤上忠烈)’이라 하여 실렸지만 백결은 없다. 문제는 ‘화동인물총기’와 <화해사전>이다.

영해박씨 가승과 백결선생

이만도의 <양단세적> 서문에 이런 내용이 있다. ‘단구박씨세적(丹丘朴氏世蹟)을 살펴보니, …충렬공은 파사왕의 5세손으로 삽량주 간이었고, 또 그 아들 백결선생이 있었다.… 충렬공이 처음 일본으로 건너갈 때 징심헌(澄心軒)에서 읊은 시 한 수는 지금까지도 민간에 전해온다.’ 단구는 영해의 별칭이니 양단과 같은 말이다. 징심헌은 양주(양산)에 있었던 정자인데 이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서술하기로 한다. 이만도는 이처럼 <단구박씨세적>을 근거로 <양단세적>의 서문을 지었다. 박제상과 그 아들 백결선생에 관한 서술은 <양단세적> 이전의 <단구박씨세적>에서 비롯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영해박씨의 가승은 <영해박씨세헌>(1869)에서 <단구박씨세적>(?), <양단세적>(1910)으로 이어왔다. <단구박씨세적>은 1869~1910년 사이 어느 해에 간행했지만 명칭만 남았고 행방은 알 수 없다. 백결은 바로 이 <단구박씨세적>에 처음 등장해서 <양단세적>으로 이어졌음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하면 박제상의 아들 백결은 조선 말기 영해박씨 가승에 처음 등장하는 인물이라는 것이다. 백결을 이렇게 기록한 근거는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앞에서 본 ‘화동인물총기’와 <화해사전>이다. 연구자들은 이들이 사료비판을 거친 신뢰할 수 있는 자료인지를 먼저 살펴야 한다. 다음 회에 그 진위를 알아본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외부원고는 본보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
  • 울산 동구 주민도 잘 모르는 이 비경…울산시민 모두가 즐기게 만든다
  • 제2의 여수 밤바다 노렸는데…‘장생포차’ 흐지부지
  • [울산 핫플‘여기 어때’](5)태화강 국가정원 - 6천만송이 꽃·테마정원 갖춘 힐링명소
  • [지역민도 찾지 않는 울산의 역사·문화명소]울산 유일 보물 지정 불상인데…
  • 울산 앞바다 ‘가자미·아귀’ 다 어디갔나
  • 울산도시철도 1호선, 정차역 총 15개 조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