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월이 오면, 정신없이 바쁘거나 반복되는 일상에서 까맣게 잊고 있었던 기념일들이 순서대로 하나둘 묻어두었던 기억을 소환하거나 무덤덤해진 마음을 각성을 하게 한다.
어린이를 다 키운 집의 어린이날은 그렇다 치고, 어버이날은 사람으로 태어났다면 반드시 챙겨야하는 날이며, 스승의날은 5월의 다른 기념일에 비해 중요도나 학창시절 추억의 여부, 선생님의 현재 연락처를 모를 경우가 태반이라 챙기려하면 사실 좀 애매해진다.
사적 영역인 생일이나 결혼기념일을 제외한 공공 기념일은 막상 그날이 되어서야 그것의 의미나 관련된 사람과 사건들을 기억하게 되는데, 세상의 많은 기념일 중에서 스승의날은 그것을 제정한 의미가 다양한 대표적인 날일 것이다. ‘세계 교사의 날’은 유네스코에 의해 1994년 이후 매년 10월5일로 정해졌는데 여러 국가들이 이 날짜에 기념식과 행사를 벌이기도 하지만 또 많은 나라들은 각기 다른 이유와 역사적 배경으로 Teacher’s Day를 기념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한글을 창제하여 온 백성에게 가르침을 준 세종대왕의 탄신일인 5월15일을 스승의 날로 정했다 한다. 누구나 고마운 선생님 한분쯤은 계실 것이다. 다른 한편 안 좋았던 기억의 선생님도 계실 테지만. 하지만 누가 말했던가, ‘지나간 모든 것은 아름답다’고, 5월, 계절이 계절이니 만큼 기왕이면 좋은 것만 생각해보자. 세상에 반성을 목적으로 하는 기념일은 있어도 나쁜 것을 기념하는 공공 기념일은 없으니.
나에게 스승의날은 남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다. 초등학교 교장 선생님으로 재직하셨던 부친 덕분에 유년기의 대부분을 학교 사택에서 보냈었고 많은 선생님들을 교실과 우리 집에서 번갈아 뵈었던 기억이 있다. 교실에서는 잘 웃지 않는 엄한 선생님이셨지만 모친이 다듬은 봄나물을 나누는 날의 선생님은 영락없는 좋은 아버지의 모습이었다.
어쩌다보니 본의 아니게 나의 선생님들과의 추억은 사적영역과 공적관계가 뒤섞여 버렸고 교실안과 밖의 그분들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연락이 닿는 선생님은 어느 한분도 안계실지 모르겠지만 해마다 스승의날이 올 때마다 마음의 한켠을 내어 좋은 추억을 담는걸 잊지 않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일 중 하나가 사람들에게서 잊혀지는 것 일텐데, 오랜 세월이 지나 선생님 성함도 가물거리거나 인사를 드리고 싶어도 연락처를 모를 경우라도, 스승의날 하루는 고마웠던 선생님을 떠올리는 정도로만으로도 충분할지 모른다.
이죽련 중구청소년문화의집 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