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도시 선언’은 그 시작이다. 이날 선포식에서 박태완 중구청장은 “잘못된 외계어 및 은어 사용, 잘못된 높임법 등 국어파괴가 심각하여 안타까울 때가 많다”면서 “한글문화 조성에 힘쓰고 한글관련 사업 발굴에 행정력을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외솔선생의 한글사랑 정신을 이어가겠다는 중구의 각오가 각별하다.
하지만 오롯이 한글을 사용하는 일은 쉽지 않다. 우리 생활 깊숙이 자리한 외래어는 말할 것도 없고 우리말로 대체가 불가능한 외국어(영어)도 한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날 행사의 하나였던 ‘한글사랑 도전잇기’만 해도 ‘도전잇기’만으로는 의미 전달이 불가능해 ‘도전잇기(챌리지)’라고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 현실이다. 몸을 사용하여 한글 자음 ㄱ~ㅎ 모양을 만들고 사진을 촬영해 ‘본인 계정 사회적 소통망’에 올려달라는 당부도 SNS를 병기하지 않을 수 없다.
챌린지나 SNS 뿐만 아니다. 행정기관명인 행정복지‘센터’는 아예 중구가 자체적으로 대체할 수도 없는 용어다. 콘텐츠, TF팀, 포럼, 세미나, 아트페어, 페스티벌 등 수시로 등장하는 외국어와 외래어를 일일이 딱 들어맞는 한글로 고쳐서 사용하는 일은 번거롭기도 하거니와 대체용어를 찾아내는 것도 예삿일이 아니다. 예를 들어 ‘센터’를 굳이 우리말로 옮기자면 중국처럼 ‘중심(中心)’이라고 하거나 순우리말로인 ‘가운데’라고 해야 하는데 ‘행정복지중심’이나 ‘행정복지가운데’를 누가 알아들을 것인가. ‘콘텐츠(contents)’는 ‘내용물’이나 ‘정보’라고 해야 할 텐데 의미 전달이 온전치 않다. 순우리말만 한글이라고 한다면 그 한계가 너무 높아 뛰어넘기가 어렵다.
언어는 생물이다. 영어가 세계 공용어인 현실에서 영어의 사용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한글도시를 지향하되, 무조건적 한글전용을 고집할 이유는 없다는 말이다. 다만 한자어를 한문이 아닌 한글로 표기해서 우리말이라고 하는데 이견이 없듯이 이미 상용화한 외국어는 발음 그대로를 한글로 표기하면 될 일이다. 중구가 한글의 기준을 지나치게 경직되게 가진다면 ‘한글도시’는 오히려 규제로 인식되면서 범시민적 ‘한글사랑’으로 이어지지 못할 수도 있다. 주민들이 부담스러워하는 한글도시는 결코 성공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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