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영환의 여행과 건축, 그리고 문화(57)]슬픈 동화의 도시, 크라쿠프
상태바
[강영환의 여행과 건축, 그리고 문화(57)]슬픈 동화의 도시, 크라쿠프
  • 경상일보
  • 승인 2021.05.21 01: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강영환 울산대학교 명예교수·건축학

유럽의 지도를 펼치면 그 중앙부를 차지하는 나라 폴란드. 200m이상의 언덕도 보기 힘든 유럽의 광활한 평원지대에 자리한다. 강과 호수와 숲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평원이 짙은 유화로 그린 풍경화가 되어 차창을 따라온다. 9세기경 그 평원에 정착했던 슬라브족은 ‘평원에서 사는 사람들(polian)’이라는 이름을 얻었고, 그 이름에서 유래한 폴란드(poland)라는 국가를 세웠다.

광활하고 기름진 토질과 풍부한 물이 풍요로운 농경사회의 기반을 이루었지만, 강대국들의 좋은 먹잇감이 되기도 했다. 막아주거나 기댈 곳이 없이 사통팔달의 지형이니 주변의 세력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을 터. 서쪽으로는 독일, 남쪽으로는 체코와 오스트리아, 북쪽으로는 스웨덴, 리투아니아, 동쪽으로는 초원지역을 건너온 몽골로부터, 오스만 제국, 러시아에 이르기까지 산지사방의 강대국으로부터 침탈을 당해온 수난과 질곡의 역사가 이어진다. 동화 같은 풍경의 아름다움 뒤에 쇼팽의 녹턴(nocturn)같은 우수가 짙게 깔려 있는 이유가 아닐까.

폴란드의 전성기는 14세기, 폴란드 역사상 가장 위대한 군주라고 손꼽는 카지미에시(Casimir 1330~1337) 대왕이 열었다, 그는 법과 행정체계를 정비하여 내치를 다졌을 뿐만 아니라 주변국과 적절한 외교관계를 유지함으로써 안정과 번영의 기틀을 마련했다. 사통팔달인 교통요지의 이점으로 무역업이 번성하자 무역으로 부를 축적한 시민계급이 성장했다. 크라쿠프(Krakow)가 중세 상업도시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된 것은 그 시기의 일이다.

▲ 폴란드의 옛 수도인 크라쿠프의 바벨성.
▲ 폴란드의 옛 수도인 크라쿠프의 바벨성.

크라쿠프는 우리네 경주와 같은 폴란드의 옛 수도이다. 크라쿠프의 도시적, 건축적 의미와 매력은 단지 그 역사성에 기인된 것만은 아니다. 수많은 수난의 역사를 거쳤음에도 13세기의 도시 구조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 수세기에 걸쳐 조성된 랜드 마크가 풍부하게 남아있다는 점, 16세기까지 유럽중세 도시 중에 손꼽힐 만큼 대도시였다는 점, 중세 상업도시의 면모를 충실하게 보존한다는 점 등등 수많은 이유를 들 수 있다.

유럽의 중세도시가 대부분 그러하듯 크라쿠프도 비슬라 강변의 석회암 구릉지를 요새로 삼아 도시를 세웠다. 구릉지에 왕성을 짓고 그 아래 평야지에 도시를 건설한 것도 유럽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패턴이다. 하지만 왕성과 도시가 하나의 정연한 체계로 결합되어 있는 모습은 그리 흔한 것이 아니다. 성문으로부터 격자형 도로망과 광장을 갖는 도심부를 거처 왕성에 이르는 ‘왕의 길’, 바로 이 도시를 관통하는 중심축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왕의 길, 이는 왕이 대관식을 하러 왕성으로 행차하던 길이다. 비록 직선으로 뻗어 있는 길은 아니지만 도시의 모든 구역을 연결하는 중앙대로에 해당한다. 이 길을 지나면서 왕들은 자기가 지키고 돌봐야 할 백성들의 공간을 살피고, 백성들은 자신의 왕이 어떤 사람인지를 확인할 수 있는 조우의 공간이 되었을 터. 치자와 피치자의 영역은 배타적, 독립적인 것이 아니라 길을 통해 소통하고 연결되었던 것이다.

성문 안으로 들어서면 격자형 도로망으로 반듯하게 구획된 도심부와 만난다. 유럽 중세도시에서 이처럼 정연하게 격자형 토지구획을 갖는 사례는 매우 드물다. 그 중심부에는 거대한 광장이 펼쳐진다, 가슴이 탁 트일 만큼 시원한 전개다. 한 변이 200m에 달하는 정사각형으로써 유럽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거대한 이 광장, 신기하게도 공허하거나 경직되게 느껴지지 않는다. 더구나 13세기에 조성되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만큼 활기에 넘친다.

가장 큰 이유는 광장 중앙에 버티고 있는 섬유회관(Sukiennice, cloth house) 때문이라고 보아야 한다. 보통이라면 대성당이나 동상, 분수 등이 있어야 할 광장 중앙자리를 아름다운 시장이 차지한 것이다. 그것도 동네시장 정도가 아니라 국제적인 무역이 이루어진 곳이니 국제무역센터 격이라 보는 것이 좋겠다. 동쪽에서 오는 향신료, 비단, 가죽제품 등과 이곳의 주산품인 섬유, 소금 등이 교환되었다고 섬유회관이라는 이름이 붙었을 뿐이다. 현재의 모습은 16세기에 르네상스 양식으로 재건된 모습이다. 건물 양 측면을 장식하는 아케이드는 베니스 광장보다 유용한 상업가로가 되고, 지붕에 폴란드식 박공과 파라펫은 토속적인 격조를 갖추었다. 궁전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만큼 품격을 갖춘 고급건축이다. 중세 상업도시의 면모를 이보다 더 잘 보여주는 도시가 또 있을까.

왕의 길은 광장을 지나 언덕지대에 있는 왕성으로 연결된다. 해발 228m 높이의 석회암 암반이 바슬라 강을 내려다보는 위치다. 왕성은 폴란드가 전성기를 시작하던 14세기에 처음 세웠다. 하지만 여러 시기를 거치는 동안 증개축의 과정을 거치면서 여러 시대의 건물들이 섞이게 되었다. 성문 안을 들어서면서 처음 마주치는 중정, 거기에서 4층의 아케이드로 구성된 궁전건물과 만난다. 경쾌하고 우아한 르네상스식 아케이드로 꾸몄다, 궁전건물이 갖는 권위와 거만함은 찾아보기 어렵다.

시작과 끝이 분명한 도시, 크라쿠프의 도시이야기도 바벨성에서 종장에 이른다. 바벨성에서는 도시의 전경이 지평선까지 펼쳐진다. 거기에 동화 같은 도시가 옹기종기 모여 아름다운 삽화를 이룬다. 결코 웅장하거나 화려하지 않은 순박함, 그것은 알뜰한 아내가 정성스레 짜 맞춘 조각보의 아름다움이다. 역사의 편린들을 정성스레 다듬고 기워낸 폴란드인들의 동화가 그려진다. 이곳은 애잔하고 슬픈 동화가 시작되었던 폴란드인들의 고향임에 틀림이 없다. 강영환 울산대학교 명예교수·건축학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
  • 울산도시철도 1호선, 정차역 총 15개 조성
  • ‘녹슬고 벗겨진’ 대왕암 출렁다리 이용객 가슴 철렁
  • 울산 동구 주민도 잘 모르는 이 비경…울산시민 모두가 즐기게 만든다
  • [창간35주년/울산, 또 한번 대한민국 산업부흥 이끈다]3년뒤 가동 年900억 생산효과…울산 미래먹거리 책임질 열쇠
  • 제2의 여수 밤바다 노렸는데…‘장생포차’ 흐지부지
  • [울산 핫플‘여기 어때’](5)태화강 국가정원 - 6천만송이 꽃·테마정원 갖춘 힐링명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