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울주군이 외고산리 옹기마을을 관광자원화하기 위해 국제지명현상설계를 시행합니다. 울산에서는 처음으로 시도하는 공모방식입니다. 울주군은 추천위원회를 통해 국내외 유명 건축가 5명을 지명했습니다. 지명현상설계가 옹기마을의 관광활성화를 이끌어내는 계기가 될 수 있을지 살펴봅니다.
-울주군이 지명현상설계를 선택한 이유는.
“일반적으로 공공시설의 건축설계에는 공모 방식을 이용합니다. 특정인을 지명하지 않고 자격조건만 제시해서 자격을 갖춘 건축사라면 누구나 응모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울주군은 이같은 공모 방식이 갖는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지명현상설계방식을 채택했습니다. 추천위원회를 거쳐 지명초대된 건축가는 5명입니다. 그들의 계획안을 받아보고 그 중에 하나를 고르는 방식입니다. 울산에서는 한번도 해본 적이 없습니다. 울주군의 용기 있는 시도입니다.”
-지명현상설계의 장점은.
“일반 공모가 어렵게 시간과 노력을 투자한 탈락자에 대한 보상이 전혀 없고, 대체로 저렴한 비용에 맞추는 설계를 해야 하기 때문에, 실력 있고 이름난 건축가들이 잘 참여를 하지 않습니다. 지명현상설계는 그런 단점을 보완할 수 있는 방안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역량이 증명된 건축가를 지명하면서도 한명이 아니라 여러 명의 경쟁을 통해 객관성을 담보하면서 좋은 작품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반면 탈락을 하더라도 설계비를 지불해야 하기 때문에 비용부담이 크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울주군은 2~5위 건축가에게 설계비를 포함한 초청비로 각각 9000만원씩 지불합니다. 당선자는 180억원 규모의 옹기마을 프로젝트의 실시설계 우선협상대상으로 선정됩니다.”
-어떤 건축가들이 지명됐나.
“국내 건축가로는 김찬중, 유현준, 조항만씨 등 3명, 외국건축가로는 스페인의 페르난도 메니스, 미국의 플로리안 아이덴버그씨 등 2명입니다. 5명 모두 세계적인 건축상을 받은 경험이 있고, 국내에서도 그들이 설계한 건축물들이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김찬중 건축가는 IF와 레드닷어워드의 수상자이기도 하고 울릉도의 코스모스리조트를 설계했습니다. TV 출연으로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져 있는 유현준 건축가는 대한민국공간문화대상을 수상했습니다. 서울대 교수인 조항만 건축가는 김수근건축상을 수상했고, 세종시중심행정타운 마스터플랜을 수립했습니다. 페르난도 메니스 건축가는 세계건축페스티벌 미래문화프로젝트상을 수상했고, 대구간송미술관 건립에도 지명초대됐습니다. 플로리안 아이덴버그 건축가는 젊은건축가프로그램에서 우승했고, 국내에서는 서울 삼청동에 있는 국제갤러리의 K3를 설계했습니다.”
-울주군이 이들에게 제시한 과제는.
“2가지입니다. 하나는 옹기마을 명소화 마스터플랜입니다. 기존 옹기마을과 옹기문화공원, 그리고 새롭게 철도이설에 따라 생겨난 철도유휴부지와 폐선부지를 어떻게 개발해야 할지의 종합계획안을 만드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옹기마을에서 가장 큰 옹기생산업체였다가 폐업한 영남요업을 상업 및 문화시설로 만드는 건축물 설계입니다. 영남요업은 울주군이 옹기마을의 앵커시설로 삼기 위해 사들였습니다.”
-옹기마을의 관광자원화를 위해 오랜기간 많은 투자를 했으나 성과가 별로 없지 않았나.
“옹기산업이 번창했던 1970~80년대는 옹기생산업체가 13곳이나 됐습니다. 도공도 500여명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이러한 번성기는 약 7년 정도 이어졌으나 석유파동이 있고, 플라스틱이 등장하면서 옹기산업은 파산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나마 90년대 초반, 우리 식생활에 ‘신토불이’ 바람이 불면서 옹기에 대한 관심이 되살아나자 울산시가 옹기엑스포를 개최하고 옹기박물관을 건립하는 등 많은 투자를 했습니다. 하지만 단번에 확 바꿔 놓겠다는 것이 문제가 됐습니다. 오래된 마을이 관광자원이 되려면 직선적인 시간성에 무게를 두는 ‘축적의 문화’에 대한 이해가 수반돼야 합니다. 계속적으로 시대흐름만 좇아 변화하는 ‘유동의 문화’로 마을의 정체성을 살려내기 어렵습니다.”
-지명현상설계로 옹기마을의 관광활성화가 가능할 거라고 보나.

“지금 옹기마을에는 60여 가구 140여명이 살고 있습니다. 옹기업체는 8개 가량입니다. 기본 자원이 부족하지는 않지만 안타깝게도 옹기마을의 겉모습은 시간의 축적을 찾아내기 어려울만큼 많이 왜곡돼 버렸습니다. 우선은 옹기마을의 정체성을 찾아내고 그 위에 어떻게 미래성을 입혀 현재에 펼쳐 보일지가 관건입니다. 지명초대된 건축가들의 옹기마을 마스터플랜에 거는 기대가 큽니다. 옛 영남요업의 리모델링에 대해서는 건축가들에게 많은 재량을 주고 있어 독창적 아이디어를 기대해보긴 합니다만 한계도 분명합니다. 접근성이 떨어지는 도심 외곽인데다 숙박·쇼핑·먹거리 등 편의시설이 거의 없는 곳에 하나의 문화·상업시설로 관광객들을 끌어들인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때론 상업시설 하나가 지역경제를 되살릴 만큼 관광객을 불러들이기도 하니까 관심을 갖고 지켜보아야 하겠습니다.”
-옹기마을의 정체성이라면.
“옹기마을은 마을단위로는 울산에서 유일하게 독창성을 가진 곳입니다. 마을의 역사는 6·25 전쟁때 피난을 온 영덕사람 허득만 옹기장인으로부터 시작돼 배영화·신일성·허진규·장성우씨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비록 70여년이라는 길지 않은 세월이지만 옹기생산이라는 경제공동체가 오롯이 유지돼 왔습니다. 전통 식생활을 담보하는 옹기, 정통성을 가진 옹기장인, 옹기 가마를 틀기에 적당한 구릉, 옹기 제작에 필요한 풍부한 흙과 일조량이 옹기마을 형성의 요인입니다. 사람-옹기-마을의 삼위일체, 그리고 봄날의 햇살 같은 특유의 따사로운 서정성이 옹기마을의 정체성이라고 봅니다.” 정명숙 논설실장 ulsan1@ks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