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구대암각화 발견 50주년]“연구보존 위한 탁본도, 암각화 훼손에 영향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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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구대암각화 발견 50주년]“연구보존 위한 탁본도, 암각화 훼손에 영향줘”
  • 홍영진 기자
  • 승인 2021.05.24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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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창기 이뤄진 암각화 탁본

울산박물관 로비에는 반구대 암각화 실물을 본뜬 대형 탁본이 걸려 있다. 탁본 아래에는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 탁본’이라고 돼 있다. 울산문예회관 전시장에 걸려 있던 것을 울산박물관으로 옮겨 전시하고 있다. 이는 반구대 암각화가 국보로 지정되던 1995년, 한 개인이 울산시에 기증한 것이다. 10대 청소년들 중에는 어떻게 한 개인이 국보인 반구대 암각화의 실물 탁본을 갖고 있는 지 의아해 할 수 있다. 지금은 불가능하지만 불과 20여년 전만해도 천전리각석과 반구대 암각화 두 국보는 별다른 제재 없이 가까이 다가가 손으로 만질 수 있었다. 탁본 작업도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가능했다.

‘탁본’은 석비나 기물 등의 문양을 원형 그대로 종이에 뜨는 방법이다. 먹을 입히고 종이를 덧대어 두드리는 작업이 동반됐다. 요즘처럼 디지털영상이 고도화하기 이전에는 전통기법의 탁본이 문화재의 실물을 가장 완벽하게 보존하고 재현하는 방법이었다.

▲ 탁본하기 위해 표면에 한지를 붙이는 작업
▲ 탁본하기 위해 표면에 한지를 붙이는 작업

1971년 반구대 암각화가 발견된 이후 전국 대학가는 물론 박물관과 미술관에는 두메산골 반구대까지 찾아와 몇날 며칠씩 탁본에 공을 들이는 일을 통과의례처럼 여기는 풍토가 생겨났다. 당시 반구대 암각화에서 얼마나 많은 탁본이 이뤄졌는지는 각 대학 박물관마다 거의 빠짐없이 반구대 암각화 탁본을 소장품으로 기록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최초의 탁본은 반구대 암각화를 가장 처음 학계에 보고한 문명대 동국대 명예교수였을 것이다. 문 교수 일행은 발견 이후에도 10여년 간 적지않은 회차의 탁본을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선사인의 바위그림 소문이 퍼지면서 탁본 행렬은 계속 이어졌다. 계절적으로 탁본하기 좋은 시기에는 앞선 팀이 마무리 될 때까지 대기하는 조가 생겨날 지경이었다고 한다. 문화재청의 관리감독 아래 진행해야 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았다는 증언도 있다. 상태가 좋거나 꽤 우수한 작품은 수억원에 판매까지 됐다고 한다.

▲ 실측 및 탁본을 위해 설치한 버팀대와 지지대
▲ 실측 및 탁본을 위해 설치한 버팀대와 지지대

2010년에는 속초시립박물관이 반구대 암각화 탁본을 상설 전시한다는 보도도 나왔다. 강원대 중앙박물관이 기증했다. 2013년에는 안동대의 탁본이 서울 여의도 국회를 비롯해 전국 각 지역을 돌며 순회전을 한 적도 있다. 연세대박물관을 알리는 블로그에서는 반구대 암각화 탁본을 주요 소장 및 전시품목으로 소개한다. 반구대 탁본은 서울대박물관의 특별전 ‘불후의 기록’(2019) 전시목록에도 올랐다. 1984년 1기생이 입학한 울산대 사학과에서도 수차례 탁본을 진행했다. 1~8기 졸업생 중에는 1990년대 초반까지 암각화를 보기위해 대곡천을 건넜고, 탁본에도 참여한 이가 적지않다. 하지만 아쉽게도 지금 울산대 역사문화학과(사학과)에는 탁본이 남아있지 않다. 수년 전 폭우에 당시 탁본 일부가 물에 젖어 훼손됐는데, 이를 말려 보관하는 과정에서 상태가 심각해졌고, 결국 어느 순간 소실되고 말았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 울산박물관 로비에 전시된 ‘반구대 암각화 탁본’
▲ 울산박물관 로비에 전시된 ‘반구대 암각화 탁본’

탁본 자체는 현 시점에도 꼭 필요한 연구 및 기록법이다. 문화재의 보존연구를 위한 필수작업이다. 문제는 탁본 작업때문에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새 암각화의 훼손에 영향을 줬다는 점이다. 탁본 작업에는 지지대와 버팀목이 설치돼야 하고, 좁은 틈새에 쇠말뚝도 박아야 했다. 수위가 차올랐을 때는 배 위에 서서 탁본을 할 때도 있는데, 배가 출렁거리다가 바위면에 손상을 주기도 했다. 연구를 위한 행위가 오히려 암각화를 파손한 것이다.

사실 반구대 암각화의 훼손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탁본은 수많은 요인 중 아주 일부다. 지질학자들 중에는 자연풍화현상을 가장 큰 요인으로 꼽기도 한다. 이마 부분이 튀어나온 바위그림 암반 자체의 구조적 문제도 제기된다. 7000년 전에는 그림보존을 위한 최상의 조건이었겠지만 수천년이 흐른 지금은 상층부의 수목관리와 암반강화를 위한 작업이 따라야 한다는 지적이다.

▲ 2013년 진행된 암각화 탁본 전국순회전
▲ 2013년 진행된 암각화 탁본 전국순회전

무엇보다 인공의 사연댐 축조 이후 반복적으로 물에 잠기는 것이 가장 큰 원인이라는데 이견은 없다. 수분을 머금은 바위면 강도가 약해지고, 계곡수에 포함된 이물들이 바위면을 긁는다. 큰 비가 내려 유량이 많아지면 토사를 비롯한 이물의 양은 더욱 늘어난다. 빨라진 유속 역시 암각화 마모를 앞당기는 주원인이다. 10여년 전만해도 암각화는 1년의 절반 이상을 물에 잠겨 있어야 했다. 그나마 현재는 잠수 기간이 연중 1~3개월 이내로 줄어든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라 할 수 있다. 홍영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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