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노인이 행복한 울주 청사진 나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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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노인이 행복한 울주 청사진 나와야
  • 경상일보
  • 승인 2021.06.10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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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시철 전 울산시의회 의장

“기억은 사라져도 자존심은 남는다.” 치매의 진행과정을 어느 의사가 풀어 놓은 말이다. 노인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병은 암이 아니라 치매라고 한다. 디멘시아(dementia), 알츠하이머(Alzheimer)라고도 불리는 치매는 기억을 지속해서 잃는 병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지능과 의지까지 퇴화돼 악화되면 4, 5세 어린아이 같은 행동을 하게 된다. 또 대부분의 치매 노인들은 기억을 잃다가 자신의 인생을 회고할 기회마저 박탈당한 채 죽음을 맞는다고 한다. 노인들이 치매를 두려운 병으로 꼽는 이유다. 치매를 두고 신이 인간에게 내린 가장 무서운 형벌이라는 말이 괜한 게 아니다.

울주군은 노인인구 비율이 높은 곳이다. 65세 이상 노인인구가 3만3700여명에 이른다. 이 때문인지 치매 노인 비율이 5개 구·군중 가장 높다. 중앙치매센터가 집계한 울주군의 60세 이상 추정치매 환자 수는 3275명이고, 추정치매유병률도 6.73%에 달한다. 75세 이상 치매고위험군 인구도 4695명으로 높은 분포를 보이고 있다. 행정이 뛰어들어 대책을 내놔야 한다는 신호다.

현재 울주군의 공공 치매복지사업은 지난 2018년 문을 연 ‘치매안심센터’를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다. 웅촌면 검단리에 자리 잡고 있는 이곳의 주 기능은 치매 조기검진이다. 그런데 접근성이 떨어지고, 시설의 규모나 사업 내용 등 여러모로 미흡하다는 주민들의 의견이 많다. 치매는 일찍 판명을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속적인 관리와 치료가 필요한데 치매안심센터가 원스톱 서비스를 담당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난 2017년부터 시작된 치매국가책임제가 선언적 수준에 그친다는 평가도 지역 센터가 갖는 한계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따지고 보면 면적이 넓은 울주군을 1곳의 치매안심센터가 감당하기도 어려운 게 현실이다. 이 때 자치단체는 노인복지관과 401곳에 이르는 마을 경로당을 그물망처럼 촘촘히 잇는 공공재의 계통 활용 방안이나, 지원인력을 발굴하고 연계시키는 등 역량을 발휘해줘야 한다.

우리나라도 오는 2026년이면 노인 비중이 20%를 넘는 초고령사회로 접어든다. 얼마 남지 않았다. 이미 65세 이상 노인인구 10명 중 1명은 치매를 앓고 있다. 사회 환경이 이런데도 치매 노인을 위한 국가복지, 자치단체 복지는 아직 걸음마 수준이다. 필요하면 자치단체 차원에서라도 선진화된 사례를 따라 배우고 우리식대로 안착시켜야 한다. 환자가 주인이자 치매복지의 모델로 꼽히는 네델란드 암스테르담의 호그벡이나 일본 큐슈의 오무타시 같이 생활형 복지를 실천하는 마을도 들여다보고, 연구해야 한다는 말이다.

풀뿌리 민주주의를 제대로 해보자고 지방자치단체를 시행한 지도 20년이 넘었다. 이제 지역 실정에 맞는 자치복지 시스템을 발굴하고 실천할 때가 됐다. 복지는 제대로 이용할 수 없는 불편한 제도로 남아서는 안 된다. 이용자 중심이 안 되면 전시행정이고, 그런 게 탁상행정이라고 비판받는다. 행정과 공공복지는 이유막론하고 쉽고, 가까워야 한다. 잘 된 것은 더 좋게, 잘 안 되고 있는 것은 손질해야 한다. 노인인구가 많고 치매유병률이 높은 울주에 치매 전담기구를 설치하든 태스크포스팀(Task Force TEAM)을 두든, 행정은 울주식의 특화된 치매복지 대책을 내놓기 위해 열정을 쏟아 부어야 한다.

이달부터는 마을 경로당도 차례로 문을 연다는 소식이다. 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전 세대의 삶이 힘들었지만 그동안 노인들의 생활도 고독한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다. 더 늦기 전에 노인들을 위한 보다 근본적인 복지 접근에 힘을 실어야 한다. 퓰리처상을 받은 시인 시어도어 로스케(Theodore Rothke)는 ‘너희 젊음이 너희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니듯, 내 늙음도 내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다.’라는 글귀를 남겼다. 울림이 크다. 소년이 청년이 되고 중장년을 넘어 노년이 되는 게 우리의 미래다. 이 사회를 일구기 위해 노고를 아끼지 않았던 주역이 지금의 노인이다. 울주민들은 이들이 품위 있게 황혼을 보낼 수 있도록 사회적 관심과 지지를 보내주고, 행정은 노인들이 행복하고 특히 치매 노인이 안전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실력 있는 든든한 버팀목이 돼줘야 하겠다. 윤시철 전 울산시의회 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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