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수환의 이어쓰는 울산史에세이]양산 ‘징심헌’ 풍광 읊은 김종직의 詩, 박제상의 것으로 둔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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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수환의 이어쓰는 울산史에세이]양산 ‘징심헌’ 풍광 읊은 김종직의 詩, 박제상의 것으로 둔갑
  • 홍영진 기자
  • 승인 2021.06.11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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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9년 간행한 <영해박씨세헌> 권1에 ‘충렬공사적’이 있다. 충렬공은 박제상인데, 영해박씨의 시조라 한다. 여기에 ‘징심헌제영(澄心軒題詠)’이라는 항목을 두고 한시 5수를 실었다.

양산 읍치(邑治)에 있는 징심헌이라는 정자를 소재로 한 것이다. 작자는 김종직, 김집, 이정구, 김일손, 이산해 등 5명이다. 이 항목 세주에 이렇게 말했다. “징심헌은 양산군에 있다.

충렬공이 고구려에서 복호를 구출하고 돌아와 무오년(418, 눌지왕 2) 7월 왜국에 들어갈 때 이곳에 들렀다. 후세 문인들이 그 유적에 감동해서 시를 지었다.” 이들 시는 모두 ‘流, 秋, 愁(류, 추, 수)’를 운자(韻字)로 하는 7언절구이다.

▲ 의 ‘징심헌제영’세주에 박제상이 왜국에 갈 때 여기에 들렀기에 후인들이 그 유적에 감동해서 시를 지었다 했다.
▲ 의 ‘징심헌제영’세주에 박제상이 왜국에 갈 때 여기에 들렀기에 후인들이 그 유적에 감동해서 시를 지었다 했다.

◇박제상은 중국 정형한시 태동기의 인물

그런데 1910년 간행한 <양단세적>의 향산 이만도(響山 李晩燾)가 서술한 서문에 이런 구절이 있다. “단구박씨세적에 충렬공이 처음 일본으로 건너갈 때 징심헌에서 읊은 시 한 수가 있다 했다.” 앞의 <영해박씨세헌>에 ‘후세 문인들이 충렬공이 들렀던 징심헌 유적에 감동해서 시를 지었다’는 말이 여기서는 ‘충렬공이 징심헌에서 시를 지었다’로 바뀌어 있다. ‘단구박씨세적’은 <양단세적>의 모본(母本)이 되었는데, 바로 여기에 충렬공이 지었다는 한시가 실려있다는 것이다.

<양단세적>에는 앞의 ‘징심헌제영’이 ‘제징심헌(題澄心軒)’으로 바뀌고, 그 세주에 이렇게 썼다. “징심헌은 양산군에 있다. 지금은 옛터에 비석이 있다. 눌지왕 2년 (공이) 왜국에 들어갈 때 이 시를 지었다.” 그리고는 한시 한 수를 실었다. “봄 경치 아득하여 시야가 끝이 없고/ 나그네 마음 쓸쓸하니 가을을 맞이한 듯./ 세상의 시비는 부질없는 일이니/ 맑은 강 바라보며 근심을 말아야지.(烟景迢迢望欲流, 客心搖落却如秋. 世間堅白悠悠事, 坐對澄江莫說愁)” 이것이 바로 박제상이 지었다는 한시이다. 이 시는 양산문화원이 2000년에 발간한 <박제상사료논총>에 한 자 어김없이 실려있다.

이 시를 논하려면 몇 가지 오류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는 박제상이 고구려에서 복호를 구하고 돌아온 다음 가족도 만나지 않고 곧바로 율포에서 왜국으로 떠난 것으로 되어있다. 율포가 어딘지는 논의가 분분하지만 적어도 양산 일원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그러므로 그가 양산 징심헌에서 왜국으로 떠났고, 이 때 시를 지었다는 말은 사실과 다르다.

박제상이 한시를 지었다는 말도 어불성설이다. 이 시는 7언절구인데, 이는 당나라 때 이루어진 정형시의 하나이다. 이전의 고체시와 비견하여 근체시라 한다. 남북조시대 남조의 양(梁)나라 심약(沈約·441~513년)은 시에서 음운(音韻)의 조화를 꾀하고 정교한 대구(對句) 사용해서 정형시 형성에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 박제상은 이보다 한 세대쯤 앞선 사람이다. 이처럼 근체시는 박제상 당시에는 중국에서도 태동기였으니 신라에서는 이러한 한시문학 사조가 있는지도 몰랐을 것이다. 더구나 이 시는 목숨을 걸고 왜국으로 떠나는 작자의 비장한 심경이 담기지 않은 한 편의 서정시일 뿐이다.

▲ 의 ‘제징심헌’. 세주에 박제상이 왜국에 갈 때 징심헌에서 시를 지었다 했다.
▲ 의 ‘제징심헌’. 세주에 박제상이 왜국에 갈 때 징심헌에서 시를 지었다 했다.

 


◇김종직의 시를 도절

그렇다면 이 시의 작자는 누구인가? 조선 세조~성종조의 문신 점필재 김종직(佔畢齋 金宗直)이다. <점필재시집>의 시집 권5에 ‘양산징심헌차운’이란 제목으로 실린 두 편의 시 중 하나이다. <양단세적>에서 완벽하게 표절한 것이다. 도절(盜竊)이란 말이 더 적합할 것이다. 그런데 점필재도 제목에서 ‘양산징심헌차운’이라 했는데, 차운(次韻)이란 앞선 누구의 시 운자를 써서 시를 짓는다는 뜻이다. 그는 누구일까?

<신증동국여지승람> 양산군, 누정, 징심헌조에 김구경(金久佔)의 시가 맨 앞에 실려있다. “널찍한 마루에서 맑은 물 내려보며/ 대숲에서 시 읊으니 유월이 가을처럼 시원하네./ 위 아래 돌아보며 천 리 경치를 다 보려니/ 여기에 머물러 백년 근심을 씻으려네(軒楹開豁俯淸流 萬竹吟風六月秋. 仰堪窮千里景 留連欲洗百年愁)” 운자가 ‘流, 秋, 愁’이다. 처음 이 운자로써 작시한 사람이 김구경임을 말해주고 있다.

김구경은 점필재보다 한 세대 앞선 조선 초기 태종~세종조의 인물이다. 문과에 급제하여 집현전직학사와 성균주부 등을 지내고, 회례사 이예(李藝)의 부사로서 일본에 다녀오기도 했다. 활동 시기로 보아 점필재가 김구경의 이 시를 차운한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이 시에는 박제상의 순절에 대해서 아무런 언급이 없다. 김구경에게는 징심헌이 하나의 정자일 뿐이었던 것이다.

점필재는 ‘양산징심헌차운’을 한 편 더 지었다. “인물이 당시 제일이었으니/ 벼슬할 때 이미 충성을 생각했지./ 갈대 위에 선명한 원통한 피는/ 저 푸른 바다에 만고 시름 남겼네.(人物當時第一流, 精忠空想割佔秋. 分明怨血葭上, 留得滄溟萬古愁)” 왜국에서 순절한 박제상을 추모하는 시가 분명하다. 경련의 ‘갈대 위에 선명한 원통한 피’는 <삼국유사> 내물왕 김제상조에 “왜왕이 제상의 다리 아래 살을 벗기고는 베어낸 갈대 위를 걷게 하니 피가 낭자했다”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여기에는 “신라 박제상이 이 군(郡)의 태수가 되어 일본에서 절의를 지키다 사망했다”는 작자의 해설이 실려있다. 점필재는 이렇게 처음으로 박제상의 충절을 그렸는데, 이는 절의를 중시한 영남사림파의 가치관이 투영된 것이다. 그는 정몽주 → 길재 → 김숙자(김종직 부)의 학통을 이었고, 이를 김일손, 김굉필, 정여창에게 전수하였다. 이들을 영남사림파라 부르고, 점필재는 그 종사(宗師)라 일컫는다.

▲ 김종직의 . ‘양산징심헌차운’ 2편이 있다. 박제상이 지었다는 시는 후자를 도절한 것이다.
▲ 김종직의 . ‘양산징심헌차운’ 2편이 있다. 박제상이 지었다는 시는 후자를 도절한 것이다.

 


◇위작 ‘징심록추기’가 그 근원

<양단세적>의 필자 조작은 정체불명의 <징심록추기(澄心錄追記)>에도 드러난다. <징심록>은 박제상이 지었다 하는데 실체가 없고, 이를 읽은 김시습이 내용을 부연설명한 것이 <징심록추기>라 한다. 김시습은 세조의 왕위찬탈 소식을 듣고 중이 되어 전국을 유랑했다는 인물이다. 여기에 “(충렬)공의 징심헌시에 이르기를”로 서두를 떼고, 앞에서 본 박제상이 지었다는 시를 실었다.

송수환 전문가·울산대 인문과학연구소 전 연구교수
송수환 전문가·울산대 인문과학연구소 전 연구교수

박제상이 지었다는 점필재의 시는 <점필재집>이 김시습 사망(1493) 후에 간행되었으니(1497년 초간, 1520년 중간) 김시습이 이 시를 보았을 리 없다. 그러므로 <징심록추기>는 1869년 이후에 지은 위작(僞作)이다. 그러므로 박제상이 지었다는 <징심록>도 당연히 위서이며, 여기에 실렸다는 ‘부도지(符都志)’가 위작임도 저절로 드러나게 된다. <중용>에 이렇게 말했다. “숨긴 것보다 더 잘 보이는 것은 없고, 작은 것보다 더 잘 드러나는 것은 없다.(莫見乎隱, 莫顯乎微])”

송수환 전문가·울산대 인문과학연구소 전 연구교수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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