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삭게 하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시간은 우리 인간의 의지와 상관없이 본래 흐르게 마련이다. 그런데도 구태여 시간이 그냥 흘러가도록 가만두고 바라보아야 할 때가 있다.
우리말 ‘삭다’에는 흐르는 시간이 이미 담겼다. 절로 흐르는 그 시간에 기대어 무엇을 위하는 마음을 버무려 새로 생긴 말이 ‘삭히다’와 ‘삭이다’이다. ‘삭다’라는 말에는 뜻이 여럿인데, ‘물건이 오래되어 본바탕이 변하다’ ‘걸쭉하고 빡빡하던 것이 묽어지다’ ‘김치나 젓갈 따위의 음식물이 발효되어 맛이 들다’ ‘먹은 음식물이 소화되다’ ‘긴장이나 화가 풀려 마음이 가라앉다’ ‘사람의 얼굴이나 몸이 생기를 잃다’ ‘기침이나 가래 따위가 잠잠해지거나 가라앉다’ 등이 있다. ‘삭히다’와 ‘삭이다’, 이 둘은 어떻게 달리 쓸까? ‘음식을 발효시켜 맛이 들게 하다’라는 뜻으로 쓰일 때 ‘삭히다’로, 그 이외의 경우에는 ‘삭이다’로 쓴다. 삭힌 김치가 맛이 있다. 화난 마음은 삭여야 진심을 비로소 입 밖에 낼 수 있고 긴장을 삭여야 능력이 드러난다.
요즘 우리가 일상에서 쓰는 말 대부분은 문자 메시지이다. 마주 앉은 사람들끼리도 문자로 주고받는다. 공간을 함께 쓰는 사람을 위한 배려심에서 나온 소통 방식이다. 공간을 달리 쓰는 사람과는 카톡을 보내면 그만이다. 공간을 벗어난 카톡은 시간도 생략되기를 바란다. 그러므로 카톡에 담아 보내는 메시지는 가볍고 가벼워야 한다. 부담없이 받아들일 수 있게. 또 이렇게든 저렇게든 서로 연결만 돼 있다면, 내가 보낸 말은 그 누군가라도 읽을 수 있다.
말이란 그 사람을 이해하는 맥락에서 구체적인 뜻을 가지는 법이다. 나를 이해하는 깊이에 따라 너에게 가 닿는 그 뜻이 다를 진데, 삭지 않아 날 선 채로 가 닿은 말이 때로 가시 돋쳐 너의 마음을 베기도 할 것이다.
김치찌개는 푹 삭힌 김장김치로 끓여야 제대로 맛이 우러나고, 가슴에 오래 묻어뒀던 그 말은 비로소 꺼낼 때 깊이 와 닿는다. 살다 보면 네가 밤새 고뇌한 흔적이 느껴지는 종이 편지를 받고 싶을 때가 있다. 네가 조심스럽게 건네는 그 삭힌 말을 듣고 싶을 때가 많다. 그 말로 살아갈 힘이 날 것 같다.
종이에 내 온 마음을 꾹꾹 담아 보내던 시절이 한 때 있었다. 그것이 언제였던가? 아득하다. 또 생각해보면, 그 한마음을 오롯이 전하고 싶어 컴퓨터 자판으로 밤새 썼다 지웠다 하던 시간도 있었다. 참 신기하고 뿌듯했다. 아까운 종이 버리지 않아 멋지다고 여기며.
생각이 채 삭기 전에 날린다. 탁구공처럼 핑 퐁 핑 퐁 명랑하다. 시간이 휘발된 말들이 곳곳을 가벼이 돌아다니는 세상에 살고 있다. 입에 매달려 전전긍긍하던 말이 글자가 생기면서 그 시공을 초월하더니, 이제는 사람 사이도 자유자재로 넘나든다. 덕분에 삶도 자유로워질까.
신미옥 고운중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