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반 애칭은 이팔청춘(二八靑春:16세 무렵의 꽃다운 청춘)이다. 2학년 8반이기도 하고 고2라는 꽃다운 시기를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교육청에서 진행하는 ‘진로교육 활성화 학생자율동아리’의 우리반 동아리명이기도 하다.
나는 우리반 진로 수업 교사이다. 진로 수업과 동아리 활동을 엮으면 좋을 것 같았다. “진로 관련 독서, 진로 관련 현장 체험, 가장 만나고 싶은 직업인과의 인터뷰, 노동과 돈의 의미를 토론하고 이 모든 활동을 진로 보고서를 만들꺼에요” 라며 거창한 계획을 말하자 담임의 오지랖에 우리반 아이들 모두 조금은 피곤한 기색이다.
진로 활동을 의미있게 하기 위한 출발로 자신이 원하는 직업과 그 직업으로 가기 위한 현실적 제한점을 쓰게 했다. 대부분 학생들은 우리 학교에 온 목적에 맞게 희망하는 직업을 쓰고 자격증 취득의 어려움, 조금 더 좋은 회사에 들어가고 싶은 열망을 써서 냈다. 하지만 몇몇 학생은 취업해서 돈을 벌고 싶지만 그 일이 자신이 좋아하지 않는 일이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라며 반문했다. 어떤 학생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부모님의 반대로 못하고 있고 또 그 일로 성공하지 못하면 어쩌죠 라며 고민을 토로했다.
아이들이 써낸 종이에는 사춘기 여고생이 느끼는 어마어마한 무게가 담겨있었다. 진로 동아리는 의욕만 가지고 시작하는 게 아니었다. 하지만 학급 전체로 있을 때는 결코 내게 하지 못한 말들을 들을 수 있어서 좋았고 아이들 하나하나가 보였다. 담임으로서 어떤 지원을 하면 좋을지 고민이 시작되었다.
부모님의 반대로 하고 싶은 일을 못하고 있다는 친구에게 “부모님을 설득해보기는 했어?”라고 물어보았다. 반대할 것이 뻔해 차마 말도 못꺼냈다고 한다. 그리고 성공못해서 후회할 바에는 안하는 게 낫다며 낙담하듯 말한다. “부모님을 설득하는 일이 먼저야. 안하고 후회하면 평생 후회하지만 해보고 후회하게 되면 더 나은 선택을 하게 된단다.” 며칠 뒤 지나가며 툭 던지듯 “별일 없지?”라는 물음에 그 학생은 이제껏 보이지 않던 미소를 지으며 “시험 끝나고 시작하기로 했어요!”라고 한다.
진로는 개인의 생애 직업발달과 그 과정 내용을 가리키는 포괄적인 말이다. 한자로 進(나아갈 진)과 路(길 로)이다. 앞으로 나아갈 길을 뜻한다. 우리 모두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하지만 젊을 때는 무한하게 열린 가능성 탓인지 앞길이 막막하게만 느껴진다. 나도 한때 진로(進路) 걱정에 진로(眞露:참 이슬 소주)만 마시던 시절이 있었다. 양수진 울산여상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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