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호의 철학산책(30)]시대를 앞선 천재 벤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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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호의 철학산책(30)]시대를 앞선 천재 벤담
  • 경상일보
  • 승인 2021.07.05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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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남호 울산대 객원교수·철학박사

과학의 발전은 눈에 쉽게 띄지만, 철학의 발전은 왜 그렇지 않은가? 이 물음에 <플라톤 구글에 가다>의 저자 레베카 골드슈타인은 “철학의 발전은 이미 일상으로 들어와 있기 때문에”라고 답한다. 화성의 탐사선이 들려주는 모래바람 소리를, 무인 비행선이 화성의 지표면을 힘차게 떠오르는 영상을 스마트폰으로 언제라도 듣고 볼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런데 철학도 발전을 하는가? 만일 그렇다면, 왜 피부로 와닿지 않는가? 철학의 결과물은 우리의 일상으로 들어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예를 들어, 왜 주인 없는 길고양를 함부로 해쳐서는 안 되는가?라는 질문을 생각해보자.

오랜 세월 동안 동물은 도덕적 배려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 노예제 폐지가 19세기에 이르러서야 실현된 걸 생각해보면, 그리 억울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플라톤은 인간에게만 생각하는 능력을 보장해주는 영혼이 있으므로, 영혼 없는 존재는 애초에 도덕적 배려의 대상이 아니었고, 데카르트는 동물을 자동으로 움직이는 기계라고 보았다.

근세 철학의 정점에 오른 칸트 역시도 이성적인 능력과 도덕적 판단 능력을 갖춘 인간만이 인격체이므로, 다른 동물은 도덕적 배려의 대상이 아니라고 보았다. 다만 다른 동물을 함부로 대하는 이는 다른 인간에게도 그렇게 할 위험이 있다는 생각으로 칸트는 다른 동물을 도덕적으로 대해줘야 한다고 생각했다는 점에서 이전의 철학자들과 다른 점이 있다. 이런 맥락에서 제레미 벤담의 생각은 주목할만하다. 그는 다른 동물 역시 도덕적인 배려의 대상이며, 그 이유는 통증을 느낄 수 있는 감수성에 있다고 보았다. 옛말에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는 말이 있다. 경험적으로 다른 동물 역시 고통을 느끼며, 이런 점에서 인간과 다를 바가 없다는 생각이다.

벤담의 생각은 20세기의 유명한 동물윤리학자 피터 싱어에게로 이어진다. 싱어와 같은 윤리학자들의 노력으로 여러 나라에서 동물보호법이 바뀌고 있다. 스위스에서 살아 있는 바닷가재를 끓는 물에 넣는 모습을 볼 수 없을 것이다. 바닷가재 역시 통증을 느끼므로, 고급 음식재료인 바닷가재를 산채로 끓는 물에 넣거나 얼음에 넣어 보관하지 못하도록 법이 개정되었기 때문이다. 김남호 울산대 객원교수·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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