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시론]킨더 모건은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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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시론]킨더 모건은 왜?
  • 경상일보
  • 승인 2021.07.06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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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준희 미국변호사

지난 2018년 11월, 울산시 경제협력 실무대표단은 신산업 육성에 필요한 사례학습과 현지 산업체·지방정부와의 교류협력사업 추진 등을 위한 협의차 독일과 미국을 방문한 바 있다(경상일보 2018년 11월11일자 사회면 참조). 대표단은 울산시가 육성·지원 중인 사업을 선도하는 기업들을 다수 만났는데, 이 기업들 가운데 킨더 모건(Kinder Morgan Inc.)이라는 기업이 있었다.

킨더 모건은 1997년 미국 휴스턴에 설립된 북미 최대 에너지 인프라 기업으로, 석유와 가스를 수송하는 파이프라인과 저장 및 수출입을 위한 터미널의 소유 및 운영과 관련한 사업을 영위하는 회사이다. 북미에는 많은 전통 에너지 기업들이 존재하는데, 이들이 생산한 석유 및 가스를 운송하고 저장하는 미드스트림(midstream) 사업이 연관 산업으로서 발달해 왔고, 2018년 미국이 전 세계 최대 산유국이 된 이후 전 세계를 휩쓴 팬데믹 사태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실적을 개선 중이다.

일종의 전방산업인 석유산업 상류부문 사업장과 지리적 수요를 전제하는 사업특성을 지닌 미드스트림 회사는 사업규모를 상징하는 척도로 보유 파이프라인의 길이가 종종 사용되는데, 킨더 모건은 ‘미드스트림 자이언트(midstream giant)’라는 업계 별명대로 총 길이 13만7000㎞에 달하는 파이프라인과 157개의 터미널을 자산으로 보유하고 있어 그 위상이 단연 압도적이다.

킨더 모건의 기업규모를 설명하는 또 하나의 방법으로, 2014년 8월에 있었던 기업합병 사례가 있다. 거래가액이 무려 710억달러(당시 환율 기준 한화 약 73조원)로, 에너지 기업 합병사례로는 1998년 엑손-모빌 합병에 이어 두 번째로 컸던 사례였다.

이 사례에는 통상의 기업합병 관련 지식만으로는 이해가 어려운 부분이 여럿 있는데, 그 중 가장 큰 의문은 거래구조와 합병자금이다. 킨더 모건의 합병사례는 별개 기업인 A사와 B사가 어느 한쪽에 흡수되는 통상의 합병이 아닌 모회사가 3개의 자회사들을 흡수하는 방식이었다. 합병자금은 이에 필요한 자회사 지분과 부채를 인수하는 데 소요되었는데, 거래발표 당시 특별한 경영권 위험도 없이 안정적으로 운영되던 자신의 자회사를 왜 굳이 모회사가 그렇게 많은 자금을 동원하여 합병해야 했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이 의문들에 대한 답은 미국 회사법상 기업형태 가운데 하나인 마스터 합자조합(Master Limited Partnership)에 있다(리미티드 파트너십에 대한 우리말 번역은 2011년 개정상법상 신설된 공동기업 형태인 ‘합자조합’을 따름). 마스터 합자조합은 1981년 미국에서 고안된 기업형태로, 회사(Corporation)와 달리 일종의 도관(導管)조직으로서 법인소득세를 내지 않는 일반 합자조합의 세제상 이점에 조합지분 일부가 상장·거래되어 투자 유동성이 더해진 특징이 있다. 마스터 합자조합은 조합 경영을 전담하며 채무에 무한책임을 지는 소수지분의 업무집행조합원(General Partner)과 출자를 담당하는 다수지분의 유한책임조합원(Limited Partner)들로 구성되는데, 위 사례 속 합병 대상이었던 자회사들이 바로 이 마스터 합자조합들이었던 것이다.

결국 합병자금의 대부분은 일종의 재무적 투자자들인 자회사 유한책임조합원들의 지분 전부를 되사는 데 필요했던 것인데, 이처럼 막대한 비용이 수반되는 기업지배구조 변경을 결행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마스터 합자조합은 시장의 기대수익률을 상회하는 배당실적을 꾸준히 투자자들에게 보여줄 수 있어야 기업으로서의 경쟁력을 갖는데, 관련 세제 혜택을 축소·폐지하려는 미 의회 등 기업환경 변화와 사업수익을 유보 없이 배당재원으로 사용해야 하는 경영 특성상 현 상태로는 과거와 같은 유기적 성장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시가총액 기준으로 북미 에너지기업 중 3위에 달하는 킨더 모건이 수십 년 간 유지해 오던 기업지배구조 쇄신을 단행한 데는 시장에서의 경쟁·생존과 기업 성장에 대한 이러한 깊은 고민이 숨어 있다.

이준희 미국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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