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설마’했는데, 또 ‘역시나’였다. 가칭 ‘이건희 기증관’ 이야기다. 작고한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의 유족이 기증한 미술품 및 문화재를 전시할 공간 부지는 서울 용산과 송현동이 최종 후보로 선정됐다고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했다. 이건희 기증관 유치를 위해 발벗고 나섰던 지방은 한마디로 물먹었다. 시원하게 김칫국을 마신격이다. 대한민국이 서울공화국이라는 것을 다시금 실감했다. 서울이 쾌재를 부를 때, 지방은 곡소리가 넘친다. 우리 울산은 이건희 기증관 유치에 그리 적극적이지 않았기에 시큰둥하지만, 문화체육관광부 발표와 동시에 전국이 들끓고 있다.
당장 부산시는 최소한의 공정한 절차도 거치지 않은 일방적인 결정에 깊은 유감이라고 강력히 반발하고 나섰다. 덧붙여, 박형준 부산시장은 “비수도권 국민도 수도권 수준의 문화를 향유할 권리가 보장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황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밝힌 “국민의 문화향유”와 글은 같지만, 결은 완전히 다르다.
문화향유의 한 근거로 접근성을 이야기하고 있다. 수도권에 인구의 절반이 모여 살고 있으니 서울이 접근성이 높은 것은 당연하다. 문제는 언제까지 접근성을 근거로 삼을 것인가이다. 문재인 정부의 국정지표인 지방분권과 균형발전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그런 근거라면 굳이 지방 곳곳에 혁신도시를 만들어 공공기관을 배치할 이유가 없다. 혁신도시 이전 시즌2는 말장난일뿐이다. 접근성과 함께 경쟁력 차원이라면 기관간 업무협의가 한층 더 편리하고 빠른 서울에 집결시켜야 할 것이다. 이건희 기증관 부지를 정부가 공정하고 투명한 절차와 과정없이 일방적으로 결정을 했다는 것은 ‘지방무시’나 다름없다. 서울만 대한민국인가라는 한탄이 나올 수밖에 없는 조치다.
가뜩이나 서울에 모든 것이 집중되면서 악순환과 부정적 효과가 갈수록 커지고 있는데도 왜 또 서울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공공기관 배치에도 불구하고 지방은 인구가 급감하고, 지방소멸을 걱정해야 할 곤궁한 처지에 놓여 있다. 혁신도시에 배치된 공공기관 임직원들도 가족이 함께 이주하기보다는 혼자 객지 생활을 하는 사람이 상당수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서울에 비해 절대적으로 부족한 교육과 문화인프라를 첫손에 꼽고 있다.
지방의 자치단체들이 앞다퉈 이건희 기증관 유치에 사활을 건 것도 이런 절박함 때문이다. 서울에는 이건희 기증관이 또하나의 전시공간일지 모르지만, 지방은 도시의 생존을 걸어야 할 정도로 중차대한 문제이다.
이건희 기증관과는 약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울산도 최근 서울을 중심으로 한 수도권의 공세에 밀린 아픔을 겪고 있다. 가장 가깝게는 현대중공업의 지주회사격인 한국조선해양이 서울에 본사를 설립했다. 또 현대중공업의 통합 연구·개발기능은 2022년에 완공 예정인 성남 분당에 입주할 예정이다. 본사 기능은 서울로, 연구개발 기능은 분당으로, 생산 기능은 울산으로 삼원화되는 것이다. 그래도 생산기지 역할이라도 하면 되는 것 아니냐고 하지만, 생산기지는 언제든 옮겨갈 수 있다. 비용 대비 투자 효율이 낮다고 판단되면, 국내에서 다른 곳이나 해외로도 기능을 이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현대자동차가 울산 북구에 건립하기로 했던 자동차박물관도 차일피일 미루다가 결국은 일산 고양에 지으면서 무산됐다. 무산 이유도 접근성과 경쟁력이었다.
지방을 외면하면서 서울 등 수도권에 설립하거나 이전하는 이유와 근거는 하나같이 똑같다. 조금 심하게 이야기하면, 서울이 관심과 흥미를 갖지 않는 것이 아니라면 지방으로 올 것은 없다는 것이다. 이대로라면, “또 서울인가”라는 한탄은 계속될 것이다. 그러면 그럴수록 지방의 소멸시간은 더 빨리 다가올 것이다. 지방의 소멸 위에 서울공화국이 온전하게 존재할 수 있을까? 답은 정해져 있다. 지방 다음은 서울공화국의 소멸이 될 것이다. ‘말은 제주로, 사람은 서울로’. 서글픈 속담이다.
김종섭 울산광역시의회 예산결산특별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