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혜숙의 한국100탑(46)]남원 만복사지 오층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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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혜숙의 한국100탑(46)]남원 만복사지 오층석탑
  • 경상일보
  • 승인 2021.07.09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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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혜숙 수필가

만(萬)가지 복(福)을 빈다는 만복사는 남원 불교의 중심지였다. 고려 문종때 창건된 절로 수백 명의 승려들이 머무는 대찰이었으나 정유재란 때 남원성이 함락되면서 불타고 폐사지로 남았다. 조선의 천재 문인 매월당 김시습의 소설집 <금오신화>에 실린 ‘만복사 저포기’의 무대이기도 하다. 노총각 양생과 처녀귀신의 사랑이야기다. 양생은 부처님과 저포놀이 내기에 이겨 소원대로 불공을 드리러 온 여인을 배필로 맞이한다. 이승의 3년에 해당하는 꿈같은 3일을 보내고 헤어진 후 지리산으로 들어가 평생을 보낸다는 이야기다. 이를 바탕으로 국립민속국악원에서 새롭게 창작한 창극 ‘만복사 사랑가’는 남원골을 들썩이게 했다. 서울의 홍대 중심가에 위치한 극장에서도 현대적으로 해석한 창작극 ‘사랑 애몽’을 무대에 올려 뜨거운 호응을 받았다.

해질녘 만복사지에는 주홍빛 노을이 마중을 나와 있다. 판타지 소설의 배경으로는 그만이다. 절터 앞의 국도로 자동차들이 끊임없이 달리고 있어 주변은 부산스러운데 참 이상하다. 텅 빈 폐사지에 들어서는 순간 시끌벅적한 소리들이 고요히 가라앉는다. 낮은 산을 두르고 앉은 동네랑 묘하게 어울린다.

▲ 남원 만복사지 오층석탑.
▲ 남원 만복사지 오층석탑.

긴 그림자를 던져 빈자리를 그득히 채운 오층 석탑이 어서 오라고 말을 건넨다. 보물 제30호 만복사지 오층석탑은 고려 시대에 세워진 단층기단의 일반형 석탑이다. 일층 몸돌이 지나치게 높지만 쭉 뻗은 풍채만은 의젓하다. 몸돌과 지붕돌 사이에 별석의 받침대를 갖춘 것은 고려 탑의 특징을 그대로 보여준다.

부처와 감히 저포놀이는 할 수 없어 탑돌이를 한다. 아무리 봐도 미감이 뛰어난 탑은 아니다. 지붕돌도 거칠고 투박하다. 만 가지 복을 빌러 온 우매한 속세지간의 사람들에겐 화려하거나 날아갈 듯 날렵한 탑이라면 다가서기 어렵다. 키는 크지만 메부수수한 모양새 때문에 만복사 탑돌이가 유명해진 것이 아닐까. 저만치 버티고 선 석인상이 눈꼬리를 올려 툭 튀어 나온 눈으로 노려본다. 그래봐야 복을 주는 건 부처님 소관이라고. 배혜숙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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