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울산 지역 전세난이 극심한 가운데 울산 동구 전하동·서부동 등 일명 ‘갭투자 성지’로 부상한 동구 일부 지역에 아파트 전세 매물이 쌓이고 있다. 현대중공업의 잇따른 선박 수주 소식이 전해지면서 시세차익을 노린 외지인 갭투자자들이 이 지역 아파트를 매입하자마자 즉시 전세 매물로 내놓고 있기 때문이다.
일례로 A아파트를 1억원에 매입할 경우 계약금 1000만원만 집주인에게 지급한뒤 남은 잔금은 전세금을 받아서 치르기 때문에 갭 투자자는 최대한 적은 투자금으로 회전율을 빠르게 돌려서 수익을 극대화하는 방식이 성횡하고 있다.
8일 아실에 따르면 동구 전하동 아파트의 전월세 매물은 한달 전과 비교해 약 53.8%, 서부동 전월세 매물은 45.5% 증가했다. 한달 전만 해도 52건, 79건에 불과했던 전월세 매물이 80건, 115건으로 각각 늘었다. 같은 기간 울산 전체 전월세 물량은 2.3% 늘어나는데 그쳤으며, 중구(-15.1%)와 남구(-8.1%)는 감소해 전월세 물량이 여전히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한달간 매매 거래량 또한 서부현대패밀리가 59건으로 울산에서 가장 많았고, 엠코타운이스턴베이 등 동구지역 아파트가 상위 5위권을 모두 차지했다.
전세 매물이 급격히 증가한 이유로 전문가들은 갭투자를 꼽는다. 갭투자는 세입자가 있는 아파트를 사는 경우를 말한다.
만약 세입자가 없는 공실의 아파트를 살 경우에는 계약과 동시에 세입자를 구하는 방법으로 매매가 이뤄진다. 세입자가 들어오는 날짜와 잔금 날짜를 맞춰 전세금으로 아파트 잔금을 치르는 방식이다. 즉 갭투자가 많을수록 전세 매물이 늘어날 수 밖에 없는 구조다.
해당지역은 조선경기 불황으로 타 구군에 비해 상대적으로 집값 상승률이 낮았고, 최근들어 선박 수주소식이 잇달아 전해지자, 울산 외 전국 각지에서 동구지역 아파트 투자에 나서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실이 집계한 갭투자 현황을 보면 울산에서 최근 6개월 간 갭투자가 가장 많이 이뤄진 곳이다. 전체 동구 아파트 매매 1195건 중 약 124건(10.4%)의 갭투자가 이뤄졌다.
엠코타운이스턴베이 인근 공인중개사 대표는 “광역시 중에서는 울산이 그나마 집값이 덜올랐고, 동구는 울산 내에서도 가장 저렴한 지역이고, 비규제지역이다. 중공업 호재, 신규 아파트 입주 등이 알려지면서 전국 각지에서 투자자들이 찾아오고 있다. 매수인 중 3분의 2가 투자자다. 투자자 중 울산사람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엠코타운이스턴베이의 경우 초등학교와 근접한 대단지 신규 아파트로 꾸준한 투자가 이어지면서 지난달 전용면적 84㎡가 5억7500만원(23층)에, 101㎡가 6억9000만원(25층)에 계약이 체결되면서 신고가를 갱신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역전세’ 거래도 생겨나고 있다. 현재 가격이 거품이라고 판단하거나,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새집 마련을 준비하려는 실거주자가 현재 거주 중인 집을 외지인 투자자에게 매도하고, 전세를 사는 것이다.
역전세 거래까지 늘자 전세 매물은 날이 갈 수록 증가하는 상황이다. 문제는 전세 매물이 쌓이면서 세입자를 구하지 못해 잔금을 못 치르거나, 예상보다 갭이 커지면서 자금 조달에 차질이 발생하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단 점이다.
울산 동구에서 공인중개사무소를 운영중인 A씨는 “갭투자자였던 매수자가 계약과 동시에 전세를 내놓고 세입자를 구해 잔금을 낼 계획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전세 매물이 쌓이면서 세입자를 제 때 구하지 못했고, 잔금 일정을 조정했다. 결국 전셋값도 조금 낮춰서 계약했다. 계약 때 예상했던 갭차이보다 잔금을 치를 때 갭차이가 더 커지는 경우가 있다. 공시가격 1억원 미만 아파트라도 소형은 3000~4000만원, 중형은 5000만원 이상 투자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그는 “갭투자들이 몰리면서 매도호가가 단기간에 눈에 띄게 상승했다. 이미 갭이 커진 상황에서 남들따라 추격 매수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조언했다.
석현주기자 hyunju021@ks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