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성가족부 폐지를 거론하는 정치인들이나 지식인이 있다. 이들의 빈곤한 역사의식에 실망을 넘어 서글픔을 느낀다. 사회와 국가가 어디로 나아가야 할는지, 생각도 비전도 엿보이지 않는다.
여성가족부가 할 일은 태산 같다. 가리어진 여성과 아동의 부자유·불평등과 억압, 가정폭력, 온·오프라인 성폭력, 직장 성폭력 같은 문제는 이미 창궐해 있는 이슈이다. 제도적으로 여러 처방이 마련되어 있지만 그 실효를 느끼기에는 까마득한 현실이다. 제도 자체의 엉성함도 문제지만 제도를 비웃는 자들의 관념과 의식의 야만성이 여전히 폭주 중이다. 거기에 일인 가구의 대세화라는 다가오는 사회 구조의 변화에 여성이 자립과 자존을 확립토록 사회적 조건을 재편해 가야 한다. 그럼에도 가장 열악한 수준의 예산과 권한과 인력으로 이도 저도 못하는 정부부처가 지금의 여성가족부가 아닌가. 문제해결을 위한 전향적 대안을 보태줘도 모자랄 판에 대뜸 폐지부터 주장하는 논리는 대책 없는 몽니에 불과하다.
인류역사의 진행은 인간세계의 심각한 갈등과 과제들을 차례로 의제화시켜왔다. 고·중세의 신분제 억압을 넘어, 근대의 노·자 계급갈등과 식민주의에 따른 민족갈등을 넘어, 20세기 후반부터는 그간의 근본 갈등에 가리어 있었거나 새로 부상한 인종·젠더·환경·평화 등의 문제가 쟁점화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쟁점에 따라 해결의 진척도는 차이가 있지만 인류 공통의 문제의식과 원망(願望)이 각인된 사연 깊은 숙명적 과제들이다. 여성은 삶의 질을 피부로 느끼기에, 한국의 젊은 남성은 스스로 빠진 공정 이데올로기의 환각을 둘러싸고, 각기 젠더 이슈가 지금 심각하다. 여성가족부는 그냥 하루아침 아이디어로 만들어진 부처가 아니다. 도저한 세계사의 흐름을 배경으로 탄생한 필연의 소산이자 심각한 한국 남녀의 갈등을 풀어가야 할 부처이다.
위와 같은 맥락을 전제로 여기에 짧게나마 제시하려는 바는 여성의 직업활동과 일자리에 관한 문제이다. 여가부의 당면 과제와 다가오는 사회구조 변화가 서로 별개의 문제가 아니다. 일인 가구가 확산됨은 그만큼 남녀 각자의 직업과 일자리의 확보, 그 속에서의 동등한 직업환경과 여성안전의 구축까지 담보되어야 하는 복합적 과제를 내포한다.
여성의 직업활동과 사회진출이 대거 가능케 된 것은 과학기술의 발전이 무엇보다 결정적 요인이었다. 월경, 임신, 출산, 수유, 육아라는 여성 고유의 생물학적 조건에 따른 온갖 부담이 집중되며, 그 부담을 줄여 주는 편리한 여성 위생용품과 분유제품, 가전제품들의 혁신적 발명과 개발이 인류의 역사를 바꿔준 것이다. 케임브리지 대학 장하준 교수가 컴퓨터는 세탁기보다 세상을 더 많이 바꾸지 못했다고 말한 것도 그런 역사적 배경을 지적한 장면이다. 가정용 냉장고와 청소기도 마찬가지다.
이제는 과거처럼 남성적 근력을 압도적으로 요구하는 직종도 많지 않다. 4차 산업혁명에 돌입한 지금은 디지털과 AI 기반의 스마트 시스템에 따라 온갖 직무들이 초자동화 공정으로 대체되어 간다. 이런 마당에 인력의 성별을 따질 때가 아니다. 그리고 과거처럼 너도나도 워커홀릭이 되어 회사에 무조건적 충성을 바치는 세태도 소멸하고 있다. 합리적이고 스마트한 인사원칙이 오히려 젊고 유능한 인력들을 붙잡는 길이다. 더 이상 남성인력만 선호하던 인사정책으로는 회사의 고용 수요가 뜻대로 확보되기 곤란할 수 있다. 4차 산업혁명 세력권의 직종은 여성인력의 생산성과 작업성과가 더 높을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CEO의 비전과 의지이다. 제조업체의 경우라 해도 고용구조를 먼저 바꾸고 새로운 기술조건과 변화하는 신세대의 감성에 먼저 적응하는 기업이 미래경영의 주인공이 된다.
기업의 그러한 변화 노력에 정부의 정책적 지원도 반드시 요구된다. 예컨대 기업 단위의 성별 고용구조를 변화시킬 때는 회사 내 편의 시설과 보육설비 등에 추가 투자가 필요하다. 특히 중소기업의 경우 국가 및 지방정부의 일정한 정책 지원이 반드시 뒷받침 돼야 한다. 그러나 그 투자는 변화의 초기에 집중되며 새로운 시스템이 정착되면 울산의 산업생태계에 상당한 경쟁력으로 되돌아 올 것이다.
유영국 울산과학대 교수·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