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대]부족주의 진보, 정의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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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언대]부족주의 진보, 정의인가?
  • 경상일보
  • 승인 2021.07.22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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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수일 울산시의회 부의장

패거리 정치를 지적하는 용어는 다양하다. 혈연, 지연, 학연을 비롯한 연줄 또는 연고주의, 인사권자 개인 친분에서 비롯되는 정실주의, 행정학에서 자주 언급되는 엽관주의 등등. 정권 초기마다 언론은 고소영(이명박 정부 고려대 소망교회 영남)이니, 성시경(박근혜 정부 성균관대 고시 경기고)이니, 캠코더(문재인 정부 대선캠프 코드인사 더불어민주당)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헤드라인을 장식한다. 정부를 비판하는 속내가 담겨 있기는 하나, 그 의도와는 다르게 독자들에게는 정권마다 자기네 패거리 사람을 지칭하는 당연한 현상으로 받아들일 위험성도 있다. ‘부족주의’라는 용어가 있다. 부족은 무엇인가? 집단을 이루어 생존과 공동의 이익을 도모하는 원시적인 단체다. 한 정치학자는 우리나라가 바로 이 부족으로 갈가리 찢겨 생존 투쟁을 벌이고 있다고 진단했다.

부족주의는 이성을 마비시키고 자기 객관화는 실종한다. 부족주의는 사라지지 않고 바야흐로 ‘진보 부족주의 시대’를 맞이했다고 비판했다. 한국의 부족주의는 ‘내로남불’이란 단어로 정리된다. 하도 많이 사용해 이제는 사자성어 반열에 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잘못이 있더라도 숨겨주고 서로 보호해주는 폐습이 너무 자연스럽다. 문재인 정권이 보여준 새로운 정치적 부족주의는 자신들은 ‘선한 권력’이라는 착각에 기반해 있다.

그래서 개혁을 위해선 내로남불과 유체이탈은 불가피하며 때론 바람직하다고 믿는다. 여기에 이런 집단 정서를 뒷받침하는 열성 지지자들의 강철같은 신념과 행동이 도사리고 있다. 이들이 진보임을 자처한다면 그건 ‘부족의, 부족에 의한, 부족을 위한 진보’라고 할 수 있다. 엄밀히 말하면 그건 진보가 아니다.

‘밥그릇 공동체’에 가까운 퇴색한 진보다. 부족주의는 부족의 이익을 도모하는 이익 투쟁이 내포돼 있다. 부족주의는 이제 문재인 정권의 대표적인 특징처럼 되어버린 내로남불과 동전의 양면 관계다. 부족의 명운을 건 부족 전쟁에서 역지사지는 고려의 대상이 아니다. 오직 승리만이 선이요 정의다.

문제는 그런 부족주의에 자꾸 진보와 개혁이라는 포장을 씌우는데 있다.

“부족주의가 뭐가 문제야?”라고 반론을 펴면 할 말은 없지만 “우리가 비판하는 것은 반진보, 반개혁 작태”라고 우기면 두 손을 들 수밖에 없다.

민주주의에서 정치 지도자는 유권자의 이익을 대표하는 역할이다. 또한 대중에게 도덕적 모범을 보여야 한다. 어찌 보면 상호 모순되는 역할이다.

유교의 영향을 받아 우리 정치인은 과도한 도덕성을 요구받는다. 대중은 정치인이 마키아벨리의 술수로 시원한 정치력을 발휘하기를 바라면서도 그 외향은 군자의 것이기를 요구한다. 이런 백마 탄 초인의 도래를 바라는 마음이 정치에 역동성을 불어넣는다는 평가도 있지만, 인물 위주의 오래된 정치 구도를 고착시킨다는 비판도 양립한다. 결국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몇 명을 뽑는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유권자가 직접 정치인들의 행동을 제어하는 인센티브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유권자는 단순히 인물에 의한 추종이 아니라 장단기의 이익을 면밀히 고려한 다음 요구사항의 우선순위를 결정해야 한다. 유권자는 자신이 속한 부족주의에 맞춰 행동할 수밖에 없지만 결국 다원적 요구가 공론장에 빠짐없이 도달할 수 있어야 한다. 너무 당연한 말일 수도 있다.

동시에 대선과 지선을 앞둔 정치권의 행보가 다시 ‘부족주의 정의’를 답습하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이 없다. 한국의 극단주의나 팬덤 문화는 소통의 단절을 부추긴다.

새로운 과학적 진리는 ‘그 반대자들을 납득시키고 그들을 이해시킴으로써 승리를 거두기보다는 오히려 그 반대자들이 결국 죽고 그것에 익숙한 새로운 세대가 성장하기 때문에 승리하게 되는 것이다’라는 깨달음이다. 과학 분야의 진리가 정치와 사회의 부족주의에까지 미치고 있다는 씁쓸한 기분을 감출 수 없다.

안수일 울산시의회 부의장

(외부원고는 본보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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