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음식디미방]육류구이 문화 전성기 이끌었던 ‘언양불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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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음식디미방]육류구이 문화 전성기 이끌었던 ‘언양불고기’
  • 홍영진 기자
  • 승인 2021.07.27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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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쇠에 얹은 언양식 불고기 옆에 남은 양념한우로 만든 떡갈비를 곁들였다.
석쇠에 얹은 언양식 불고기 옆에 남은 양념한우로 만든 떡갈비를 곁들였다.

‘언양불고기’에 대한 관심과 애정은 이미 전국적이다. 서울식 불고기, 광양식 불고기와 함께 언양식 불고기는 한국의 외식문화를 이끈 대표주자로 꼽힌다. 먹방과 조리경연, 그리고 음식기행을 주로 다루는 미디어를 통해 ‘한국의 3대 불고기 진미’라는 타이틀로 식지않는 인기를 증명하고 있다.

▲ 언양식 불고기는 기름기가 적은 부위가 좋다.
▲ 언양식 불고기는 기름기가 적은 부위가 좋다.

언양불고기는 50여년 전 처음 그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했을 때보다 대중적이면서 동시에 고급 음식으로 전국구 인지도를 이어가고 있다. 3대 불고기는 무엇이 어떻게 다른걸까. 광양불고기는 고기의 육질을 살려 숙성시간 없이 밑간 후 바로 구워 먹는다. 고기를 얇게 저미고 양념을 묻혀서 숯불 위 석쇠에 얹어 볶듯이 뒤집으며 굽는다. 고기는 펴지않고 둥그렇게 말려있는 모양대로 구워야 육즙을 잘 머금은 채 부드럽게 익는다고 한다. 달달한 맛과 함께 매실청을 추가해 상큼한 맛까지 곁들여 즐길 수 있다고 한다.

▲ 언양식 불고기에 사용하는 간장 양념장. 곱게 간 과일·다진 마늘을 넣었다.
▲ 언양식 불고기에 사용하는 간장 양념장. 곱게 간 과일·다진 마늘을 넣었다.

서울불고기는 구이와 전골의 중간형태다. 서울불고기는 가운데 부분이 옴폭 솟아오른 독특한 모양새의, 동으로 만든 조리 냄비부터 남다르다. 자박거리는 육수를 동판 냄비 가장자리에 붓고, 솟아오른 가운데 부분에 양념된 고기와 채소를 얹어 굽는다. 흘러내린 육수는 가장자리에 있던 육수와 합쳐진다. 고기와 채소는 익으면 먼저 먹고, 달짝지근한 양념 육수에는 당면 등 부재료를 넣어 또다른 맛을 즐긴다.

▲ 양념장에 버무려놓은 불고기 거리. 양념맛이 배어들도록 한 뒤 굽는다.
▲ 양념장에 버무려놓은 불고기 거리. 양념맛이 배어들도록 한 뒤 굽는다.

언양불고기는 광양과 서울불고기와 또 다르다. 광양식보다는 육즙이 적으면서 단단하고 담백하다. 서울식보다는 고기 본연의 맛에 더 치중한다. 얇게 썬 한우를 양념에 버무려서 숯불에 직화로 먹는다. 양념은 집집마다 약간씩 다르지만 간장으로 주로 한다. 설탕, 참기름, 다진파 등이 추가된다. 언양불고기는 ‘언양미나리’와 한 세트다. 겉절이 혹은 생으로 함께 먹으면 고기맛이 더 좋다고 한다.

▲ 남은 고기로는 떡갈비를 만들어도 좋다.
▲ 남은 고기로는 떡갈비를 만들어도 좋다.

‘울산의 음식’하면 열에 아홉은 이 ‘언양불고기’를 꼽는다. 하지만 그 모양새와 맛을 설명할 순 있어도 음식이 탄생한 연원을 제대로 설명하는 이는 드물다. 포털사이트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울산 언양읍의 향토 음식으로 이 지역 특산물인 쇠고기를 얇게 썬 후 양념하여 석쇠에 구워 만든 불고기다. 언양은 일제 강점기부터 도축장과 푸줏간이었는데, 1960년대 이후 고속도로 건설을 위해 모여들었던 근로자들이 이곳의 고기 맛을 보고 이때부터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그래서 언양불고기의 출발점과 조리법에 대해 한발 더 깊이 들어가 살펴봤다. ‘근대이후 100년간 한국 육류구이 문화의 변화’(이규진·2010)에 따르면 1910~1945년은 육류구이 문화의 형성기, 1945~1975년은 발전기, 1976~2000년까지는 전성기라고 한다. 이후는 육류구이 문화의 정체기라고 했다. 언양불고기는 육류구이 문화의 전성기를 이끈 선두주자가 아니었을까 한다.

▲ 이다혜 원장이 불고기를 구우며 화로 속 숯불 강도를 조절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런 음식이 왜 언양에서 나왔을까.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울산역사문화대전)에는 ‘언양불고기 전국의 입맛을 녹이다’라는 글이 들어있다. 언양의 5일장과 우시장, 숯과 소금이 언양불고기의 탄생 배경이라고 소개한다. 아주 오래 전에는 내륙 사람이 소금을 구하기 위해 언양을 방문했다. 오늘날 염전은 대부분 서해와 남해에 밀집해 있지만, 원래는 경상도쪽 울산 염전도 크고 유명했다. 언양장은 언양 사람들이 울산에서 소금을 사 와 내륙의 산물과 거래하던 장소였다. 울산 염전 소금은 숯으로 구입했다고 한다. 언양 일대 풍부한 참나무와 떡갈나무 덕이다. 울산 염전은 바닷물을 가두어 증발시켜 소금을 생산하는 천일염이 아니라, 소금 덩어리를 가마에 넣고 구워서 소금만 분리해 추출하는 자염을 생산했다. 당연히 엄청난 양의 숯이 필요했다. 숯과 소금이 최초의 언양장을 형성한 배경이라는 것이다. 언양장 옆에는 우시장과 도축장도 있었다. 신불산, 가지산, 간월산을 중심으로 두서, 두동, 산내 등은 소를 키우기 좋았다. 실제로 언양의 도축 암소 1등급 비율이 75%나 돼 전국에서 제일 높았다고 한다.

그렇다고 누구나 소고기를 맛보았던 건 아니다. ‘언양불고기’는 아주 예전부터 있었던 건 아니고, 앞서 언양장과 같은 역사문화적 배경을 기반으로 현대화가 한창 진행되던 1960년대 이후 비로소 탄생한다. <울산의 음식>(울산발전연구원 울산학연구센터·2018) 속 ‘언양불고기, 50년의 역사’는 그 과정을 비교적 상세하게 알려준다. 심삼만 일가가 1969년 언양에 개업한 ‘부산식육점’이 언양불고기의 출발점이라는 것이다. 이후 언양불고기는 자수정 광산에서 일하는 노동자, 경부고속도로 개통전후 언양에서 일했던 노동자, 언양 인근에 거주했던 생산공장 노동자 등 전국에서 몰려 온 팔도 출신 근로자들에게 울산의 맛으로 큰 인기를 모았다. 이후에는 울산지역 국가공단 노동자와 대기업 직원들도 가세했다. 1980년대 이후 마이카 시대가 시작되면서 자동차를 타고 가서 외식을 즐길만한 장소와 먹거리가 덩달아 인기몰이를 했다. 언양불고기는 당시 젊은 노동자와 핵가족문화의 바람을 타고 울산지역 최고의 메뉴로 각광받게 됐다. 폭발적으로 늘어난 회식문화 역시 영향이 컸다.

▲ 이다혜 전문가·울산음식문화연구원장
▲ 이다혜 전문가·울산음식문화연구원장

언양불고기는 간단한 조리법으로 집에서도 해 먹을 수 있다. 한우를 살 때는 지방이 적은 부위로 최대한 얇게 저며달라고 주문해야 한다. 얇게 썬 한우는 청주와 참기름으로 밑간을 한 뒤 굽기 전에 조림간장(맛간장)으로 한번 더 버무린다. 조림간장은 간장에 배·사과를 갈아넣고 양파즙과 다진 마늘까지 추가하여 중불에서 뭉근하게 끓인 뒤 식힌 것이다. 농도는 물엿 보다 약간만 묽게 한다. 그렇게 장만한 고기를 뭉치고 펼치면서 납작한 형태를 만들어 불에 굽는다. 일반적으로는 석쇠에 올려 참숯으로 불내를 가미하면 된다. 하지만 전문가가 아닌 이상 뭉쳐진 고기를 흐트러지지않게 굽는 일은 어렵다. 이때는 후라이팬을 달궈 먼저 살짝 익힌다. 고기가 익으면서 육즙을 잡아주고 잘 부서지지 않도록 단단하게 결속되기 때문이다. 이후 가정용 숯불을 피워 석쇠를 걸쳐두고, 그 위에 고기를 옮겨 얹어 불조절을 하면서 마무리하면 된다. 불내가 입혀져 더욱 맛있는 불고기가 완성된다.

이다혜 전문가·울산음식문화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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