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는 다들 비슷했을 거예요. 금전적으로 상당히 힘들었죠. 전시도 거의 없으니 작품이 팔리지도 않고, 강의도 할 공간이 없죠. 일자리가 있으면 조각과 상관없는 일도 다 했어요.”
조각가 성민애씨는 지난 2007년부터 조각과 공예, 영상 등 다양한 작업을 진행했다. 그중 돌 조각에 관심을 가지고 집중하며 지난 2016년 남구문화원이 주최한 한마음미술대전에 출품해 입상했다. 이듬해 그의 작품은 대상 작품에 선정되는 영예를 차지했다. 작품의 소재가 돌이다 보니 힘이 많이 부쳤다. 한 해 만들 수 있는 작품 수에 한계가 있다. 학생들과 함께하는 강의도 한다.
하지만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강의를 거의 나서지 못했다. 수입은 전무한 실정이었다. 대신 다른 성과가 있었다.
“작품 구상을 하기로 작정했죠. 서울로 부산으로 공부하러 다녔어요. 전시회란 전시회는 다 찾아다녔어요. 물론 수입도 있어야 하니까 분수작업도 하고, 사찰에 가서 단청 작업도 하고 했죠. 참선의 시간을 가진 셈이죠.”
그는 실제로 ‘참선’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수많은 전시장을 찾아다니며 스케치 작업을 하며 다양한 작품을 접했다. 창의적인 요소를 가미한 작품을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다. 코로나 시대 작업을 못하는 시간에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보충했다. 자신의 작업을 보다 글로벌한 작품으로 탄생시키고자 하는 자기계발의 욕구다.
“조각뿐만 아니라 벡스코, 코엑스에서 열린 아트페어에 참석하며 정말 수많은 미술인을 만났어요. 그동안의 작업에 대한 반성도 많이 하고, 앞으로 제 작업 방향에 대해서 희망도 얻었죠.”
그 결과 3년 동안 벼르고 벼른 개인전도 열었다. 너무 벅찬 감동이 밀려올 정도로 결과도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아직 시작 단계라고 겸손하게 표현했다. 코로나 시대 창작활동을 하고 전시를 열 수 있었다는데 만족하는 것보다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 것에 불과하다는 의미다.
“개인전을 치르면서 코로나로 인해 관객이 생각보다 많이 오지 못했어요. 전시에는 사람들이 많이 와야 다양한 의견을 들을 수 있는데 말이죠. 그래서 사실은 조금 안타깝죠. 의견을 들어야 작품에 대한 평가를 받을 수 있는거잖아요. 그래서 더 많은 대면 활동을 하고 싶어요.”
그가 말하는 대면 활동은 코로나 시대 인터넷, 즉 유튜브나 인스타그램 등을 포함해 사람들과의 소통을 의미한 것이다. 코로나로 접촉이 불가능하다고 손을 놓고 있다면 예술 발전은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인생은 제가 원하는 데로 움직이지 않는 거잖아요. 거기에 언제나 유동성이 있는 것이 예술인데 이름을 남길 수 있도록 죽을 때까지 예술을, 돌 조각을 하면서 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겁니다.”
전상헌기자 honey@ks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