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일기]기준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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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기준의 차이
  • 경상일보
  • 승인 2021.07.28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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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수현 중남초 교사

중국 고전 속의 글을 발췌한 <도시를 걷는 낙타>에는 세상의 이치를 담은 짧은 글들이 있다.

어느 날 아버지가 아들에게 ‘ㅡ’를 가르쳤다. 다음 날 아버지는 책상을 닦다가 젖은 걸레로 ‘ㅡ’자를 크게 쓰고는 아들에게 그것이 무슨 글자인가를 물었다. 아들은 그 글자를 알아보지 못했다. “내가 어제 가르쳐준 ‘ㅡ’자 아니냐?”라고 다그치자, 아들은 눈을 크게 뜨고 말했다. “하룻밤 사이에 어찌 그리 커졌습니까?”

왜 아들은 그 글자를 알아보지 못했을까? 아들이 ‘ㅡ’를 몰라본 것은 전날 배웠던 것이 ‘ㅡ’의 모양이 아니라 ‘ㅡ’의 크기였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글자의 모양을 가르치려고 했으나, 아들은 글자의 크기에 집중한 탓이다.

용기를 잘못 가르치면 쓸데없이 힘자랑하고도 그것이 용기인 줄 알고, 명예를 잘 못 가르치면 악명이 높은 것도 명예로 착각하게 되듯, 무엇을 기준으로 가르치고 배우느냐에 따라 모든 것이 달라질 수 있다는 깨우침을 전하고 있다.

무엇을 기준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것이 또 있다.

우물 안 개구리 이야기가 대표적이다. 우물 안 개구리는 자신의 세계가 전부라고 생각한다. 동해에서 온 자라를 만나 우물 속 생활을 자랑한다. 우물을 독점하고 우물 속에서 큰소리치고 사는 재미는 최상의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우물이 좁아서 들어가지 못하는 자라가 들려준 바다의 크기와 깊이, 엄청난 가뭄과 장마에도 항상 철철 넘치는 바닷물의 양에 관한 이야기에 넋을 잃고 만다. 개구리처럼 우리도 자신이 살아온 만큼 사고한다. 이러한 한계를 벗어나기란 쉽지가 않다.

학교 현장에서 맞닥뜨리는 다양한 상황에서, 아이들을 대하고 교육 문제를 이야기할 때도 자신이 무엇을 기준 하느냐에 따라 쟁점을 달리한다. 당면한 여러 가지 일에 관해 자신이 살아온 만큼 사고하면서 상대를 우물 안 개구리로 생각해 버린다. 내가 개구리처럼 살았고, 남들은 자라처럼 산 것이 아닌가 겸손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방학 중 교원의 근무와 관련한 여러 쟁점이 있다.

농어촌 지역에 있는 우리 학교에서는 여름방학 중 방과 후 학교와 더불어 영어, 스포츠, 오케스트라 캠프 등 다양한 교육 활동이 이루어진다.

특히 방학 중 방과후 학교 프로그램은 지역 아이들의 교육뿐만 아니라 돌봄 기능을 담당한다.

방과후 학교가 학교 밖 지역문화센터로 성장해야 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지만, 학교가 센터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이상 아이들의 교육 활동을 지원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코로나 상황에서 아이들이 안전하게 더 많은 활동을 경험하게 하는 것은 ‘무엇을 기준’으로 바라보고 결정을 하느냐의 문제이다.

개구리의 관점이든, 자라의 관점이든 ‘기준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그 결정이 서로 존중되는 교육 현장이 되길 바란다.

임수현 중남초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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