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따지고 보면, 공직사회의 갑질문제는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똥이 무서워서 피하냐, 더러워서 피한다’라는 심정으로 피해자들은 숨죽여 지내는 경우가 다반사다. 떠들어봐야 어쩔 수 없다. 조직적인 은폐와 축소로 암묵적 동의를 강요하기 때문이다. 모든 것은 ‘네 탓’이라는 잘못된 문화를 강요하기 보다는 이제라도 ‘내 탓’이라고 반성하고 성찰해야 한다. 그것이 지금 이 시대가 공직사회에 요구하는 변화의 바람이자, 개혁의 핵심이다. 많이 바뀌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음습한 잘못을 공직사회 문화라고 강변하며 동굴 속에서 나오지 않으려는 공직자가 있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전국 곳곳에서 하위직 공무원들이 상사의 다양한 갑질과 성폭력 등 범죄적 행위에 의해 정신·육체적 고통을 당하고 있는 사례를 우리는 익히 알고 있다. 이따금 참고 참다 죽음으로 항변하고 있는 뼈아픈 현실을 접하면서 참담함을 느끼지 않는 공직자는 없을 것이다. 못 느꼈다면 바로 당신이 갑질의 당사자일 것이다.
우리시에서는 이 같은 범죄적 행위를 근절하기 위한 공무원 노조의 강력한 주장으로 지난해 말, ‘울산시 직장 내 괴롭힘 금지 조례’를 제정하기에 이르렀다. 조례 제정에 따라 직장 내 괴롭힘 등을 근절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고, 상사와 부하 직원 간 상호 존중하는 문화도 지속적으로 만들어나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따금 노조로 하위직원들의 하소연이 접수되는 것을 보면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먼 듯하다. 상사의 갑질을 참다못해 쏟아내는 분노와 읍소의 목소리를 들을 때마다 노조위원장으로서 같이 공분하고 심한 자괴감도 느낀다. ‘나 때는 말이야’라는 구태의연한 라떼 정신으로 똘똘 뭉친 꼰대 갑질은 동 시대를 같이 살아온 공직자는 물론, 미래를 책임지고 나가야 할 세대들에게는 전혀 공감과 동의를 얻을 수 없다. 극강의 분노만을 유발할 뿐이다.
이제 베이비부머 세대는 점차 공직사회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있다. 이를 대체하고 있는 소위 MZ(밀레니엄세대와 Z세대)세대는 톡톡 튀는 개성만큼이나 주장이 강하고, 과거의 구태와 악습의 고리를 끊겠다는 단호함이 넘친다. ‘버릇없다’거나 ‘조직에 동화되지 않는다’라는 어설픈 논리와 궤변으로 MZ세대 공직자들을 부하라는 이유로 자신의 틀 안에 가둬두려는 상사는 이제 공직사회에 발붙이기 어려울 것이다. 과거에는 용인되던 갑질이나 성 관련 비위가 이제는 범죄행위로 다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명심하고 변화된 세상에 맞춰 신중한 언행을 해야 한다.
조례와 법률 등 강제적 수단의 동원이 아니라 한 사람의 인격체로 존중하며 다가설 때 울산시라는 조직은 신명나는 일터가 될 수 있다.
공무원노조에서는 세대구분 없이 모두가 어울려 오직 울산시민만을 위해 일할 수 있는 행복한 일터를 만들기 위해서 몇 가지 제안을 하고자 한다. 첫째, ‘낡은 관행들은 칼집에 넣어 박물관에 보내자’. 상명하복(上命下服)이라는 뿌리 깊은 공직사회 특유의 직장분위기에 비롯된 경직된 조직 문화, 지나친 의전, 휴가 사용과 정시 출퇴근 눈치보기, 회식강요, 과도한 회의 자료 작성, 보고서 양식 꾸미기, 업무시간외 SNS 업무 지시, 휴일 업무지시, 개인업무 지시 등의 갑질 행태들은 이제는 정말 칼집에 넣어 박물관에 보관하고 꺼내보지도 말자. 둘째, ‘직원들의 행복한 삶을 위한 복지시책을 시행하자’.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일·생활 균형이 중요하다고 느낄 것이다. 지나친 형식과 절차에서 벗어나서 실용적으로, 간섭보다는 선을 넘지 않는 관심으로 각자가 주어진 환경에서 워라밸을 실천할 수 있도록 직원 마음건강 관리, 심리검진, 직무스트레스 해결 방안 등 복지차원의 지원을 마련하자.
장강(長江)의 도도한 뒷 물결이 앞 물결을 밀어내듯 이제는 밀레니엄세대와 Z세대가 ‘아름다운 산하(山河) 웅비하는 생명의 삶터’ 천년 울산을 이끌어갈 중추적인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근본적인 조직문화 자체를 바꿔 젊은 세대들이 한바탕 열심히 일할 수 있는 운동장을 마련해 주는 것도 간부 등 선배 공무원이 해야 할 중요한 역할이라 본다.
김태철 울산 공무원노조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