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달 20일 울산지법에서 열린 이른바 ‘속옷 빨래’ 교사에 대한 국민참여재판을 방청했다. 피고인인 해당 교사는 초등학교 저학년 학생들에게 ‘속옷 빨래’ 숙제를 내고 인증사진을 올리도록 했고, 학생들이 올린 인증사진을 영상으로 편집해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올렸다. ‘섹시 팬티 자기가 빨기’라는 자극적인 제목을 달았다. 누군가가 해당 영상을 성인 사이트에 퍼트렸고, 이를 본 경기도의 한 시민은 “이상한 영상이 올라왔다”며 112에 신고했다. 아이들의 얼굴이 그대로 노출된 영상을 접한 학부모는 “어이가 없었다”고 했다. 이 교사는 또 학급 SNS에 올라온 속옷 빨래 사진에 ‘이쁜 속옷 부끄부끄’ ‘울 공주님 분홍색 속옷’ 등의 부적절한 댓글을 다는가 하면 병원에 입원한 여학생이 잘 지내고 있다는 사실을 다른 학생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여학생의 볼에 뽀뽀(교사는 뽀뽀하는 시늉이었다고 주장)를 하며 사진을 찍었다. 병치레가 잦은 학생의 학부모에겐 ‘애가 누구를 닮아서 약한건가요, 밭인가요, 씨인가요’라는 SNS 메시지를 보냈는가 하면, 생리를 하기 전까지 여자가 아니라는 식으로도 얘기했다고 한다. 학부모의 몸매를 지적하는 발언, 체온 측정을 이유로 아파서 엎드려 있는 학생의 등에 손을 넣은 사실도 공개됐다. 검찰측이 각종 증거를 제시할 때마다 방청석 곳곳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피고인은 속옷 빨래 사진을 허락 없이 유튜브에 공개한 혐의(개인정보보호법 위반)를 인정하면서도 대부분의 다른 행위에 대해선 성적인 의도가 전혀 없었다고 반박했다.
속옷 빨래의 경우 양말·신발 빨기, 방 정리하기, 빨래 개기, 분리수거하기 등 수십 가지의 효행 숙제 중 하나이자 속옷을 적나라하게 드러나게 사진을 찍도록 한 것도 아니라며 성적 의도를 부인했다. 수 년 전부터 냈던 효행 숙제였고 그동안 학부모들의 반발도 없었다고 강조했다. ‘섹시’라는 표현 역시 외모를 평가하기 위한 의도가 아니라 학생을 칭찬하는 차원에서 나온 표현이었다고 해명했다. 아파서 엎드려 자고 있는 학생을 깨우기보단 배려 차원에서 목덜미 부근에 손을 얹어 열을 측정한게 불필요한 오해를 사게 됐다는 식으로도 진술했다. 하지만 7명의 배심원들은 대부분 유죄로 인정했고, 1심 재판부는 배심원들이 평결한대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요즘들어 ‘성인지 감수성’이라는 말이 널리 쓰인다. 법조계에선 성범죄 사건을 심리할 때 피해자의 눈높이에서 사건을 바라보고 이해해야 한다는 개념으로 주로 사용한다.
피고인과 변호인은 재판 과정에서 아이들의 건강한 성장을 위해 어느 교사보다 더 애착을 가지고 의욕적으로 학생들을 지도하는 과정에서 발생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교육계 일부에선 교사의 적극적인 지도활동이 혹시 모를 사건으로 비화되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하지만 분명한 점은 이번 사건이 ‘성인지 감수성’이 결여된 교사의 불필요한 언행이나 행위 등으로 인해 발생했다는 것이다. 검찰측 증인으로 출석한 아동 상담 전문가는 “피고인에게 성인지 감수성이 부족한 것 같다, 성희롱, 정서적 학대라고 판단된다”는 등의 의견을 냈다. ‘속옷 빨래’ 사건이 학생들의 바른 성장을 위해 묵묵히 일하는 울산 교육계를 위축시키는 결과를 낳지 않길 바란다. 이왕수 사회부 차장 wslee@ks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