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준금칼럼]잡초를 배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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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금칼럼]잡초를 배워라
  • 경상일보
  • 승인 2021.08.10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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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준금 울산대 사회과학부 교수·행정학

장마가 끝나고 곳곳에 잡초가 무성하다. 번듯하게 서 있는 소나무나 참나무에 비교하면 잡초는 키도 작고 가늘어 보잘 것이 없다. 흔히 잡초는 강인함의 대명사로 알려져 있지만 의외로 연약한 식물이다. 그래서 잡초는 열악한 환경을 극복하고 다른 식물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나름대로의 생존전략을 가지고 있다. 요즘 국민들이 코로나와 팍팍한 경제상황으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는 이를 타개하기 위해 다양한 대안을 마련하고 있지만 여전히 역부족이다. 이런 상황에서 잡초의 생존전략은 정부 정책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선 잡초는 다양성을 추구한다. 같은 종(種)의 잡초라도, 논에서 크는 잡초와 밭에서 자라는 잡초의 씨앗이 다르며, 키가 큰 것도 있고 작은 것도 있다. 생존을 위하여 환경에 따라 스스로 변화하여 다양한 변종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종이 균일하면 환경변화에 대한 적응력이 떨어져 모두 다 전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지방을 보자. 어느 지방에서 성공했다고 알려진 사업이 있으면 많은 지방에서 벤치마킹이라는 명목으로 충분한 검토 없이 자기 지역에 그대로 도입한다. 한때 통영의 동피랑이 입소문을 타자 전국에 벽화마을이 유행하더니 지금은 시들하다. 최근에는 해상케이블카, 짚라인, 출렁다리 등이 곳곳에 들어서고 있다. 영화제는 또 어떤가. 전국의 웬만한 도시치고 영화제가 없는 곳이 없을 정도이다. 지방마다 그만그만하고 별 특색 없이 비슷한 시설들이 들어서고 행사들이 시행되고 있다. 처음에는 반짝하고 관심 대상이 되지만 불과 몇 년 되지 않아 골칫거리나 흉물로 전락하는 경우가 너무도 많다. 잡초가 전멸하지 않고 오랜 세대에 걸쳐 생존하는 것은 균일성을 탈피해 개성 있는 다양성을 유지하기 때문이다. 맥락도 여건도 다른 타지방의 것을 손쉽게 베껴 오니 전국에 어디를 가도 시설과 행사, 기념품들이 비슷하다. 이들이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지는 것은 시간문제이다.

잡초는 항상 대안을 가지고 있다. 잡초의 가장 최상의 목표는 씨앗을 퍼뜨려 생존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바람이나 곤충이 꽃가루를 옮겨주어야 한다. 만일 바람이 불지 않거나 곤충이 몰려들지 않으면 잡초는 생존이 어려워진다. 그래서 잡초는 이러한 경우에 대비해서 자가수분(自家受粉)을 하는 등 다양한 플랜B를 마련하고 있다.

정책으로 치면 유연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모든 정책은 예상과는 다른 결과가 나오기 십상이다. 이 때 이념이나 이해관계에 치우쳐 고집스럽게 기존 정책을 계속 추진하면 회복하기 어려운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 이른바 ‘임대차 3법’으로 전세가가 급등하고, 아파트 가격은 계속 상승하고 있다. 코로나 확진자가 급속히 증가하고 있지만 백신접종률은 제자리 걸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동산 정책을 수정하거나 백신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는 플랜B는 보이지 않는다. 기존 방식이 적용되지 않을 때는 이념을 초월하고, 지지층의 반발을 두려워하지 않는 과감한 정책전환과 새로운 발상이 필요하다. 환경의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하여 ‘생존’이라는 목적을 여유있게 달성하는 잡초를 보라.

뽑아도 계속 자라나는 잡초는 부정적 의미가 강하다. 하지만 알고 보면 잡초만한 탁월한 생존전략가도 없다. 오히려 정부가 만들어 내는 정책 중에는 잡초보다 못한 것이 더 많다. 결과를 면밀하게 분석하지 않고 이념만을 앞세우는 정책, 분명히 부작용이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수정이나 보완 없이 강행되는 정책, 다른 지역에서 시행되는 것을 그대로 베껴오는 정책, 이들 모두 잡초의 관점에서 보면 한심한 정책들이다. 정부뿐만 아니라 기업, 대학 등 어느 조직이나 나름대로 여러 정책대안들을 만들어 내고 있다. 이들 중에는 정말 의미 있는 것도 있지만, 문제해결에 필요한 다양성과 유연성을 갖추고 있는지 의문이 드는 것이 많다. 열악한 조건에서도 최선의 생존방안을 찾아내는 잡초를 배워보기 바란다.

정준금 울산대 사회과학부 교수·행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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