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4월, 내원사는 덕산사라는 옛 이름을 되찾았다. 삼장면 대포리 장당계곡으로 가는 길의 내원사 안내판은 모두 덕산사로 바뀌어 있었다. 지난해 경내 대웅전 위치 고증을 위한 시굴조사에서 ‘덕산사’라는 이름이 새겨진 기와를 발굴했다. 이 기와는 조선시대 성종 16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확인이 되었다. 덕산사는 신라 무열왕 4년(657)에 원효대사에 의해 창건된 것으로 전해지며, 임진왜란과 6.25전쟁 때 전소되었다. 이후, 원경스님이 1959년 절터를 인수하고 ‘내원사’라는 이름으로 사찰을 재건했다.
산청의 삼장면과 시천면을 덕산이라고 한다. 시천면에서 시집온 이웃은 덕산댁이고 삼장이 고향인 친구도 덕산 큰 애기로 불렸다. 어머니는 지리산 고사리나 산나물을 구하기 위해 덕산장을 오가고, 우리의 여름철 피서지도 덕산의 맑은 계곡이었다. 그러니 천년 고찰 ‘덕산사’는 아주 자연스럽다.

덕산사를 찾아가는 오후, 시커먼 구름이 골짜기를 가득 채우더니 소나기가 세차게 퍼 붓는다. 절 입구에 이르자 거짓말처럼 비가 그치고 반야교 위로 물안개가 피어오른다. 지리산 봉우리도 안개 자욱하다. 빗물에 흠뻑 젖은 삼층석탑은 맨몸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지붕돌 처마에서는 눈물처럼 물이 뚝뚝 떨어진다. 보물 제1113호 내원사 삼층석탑은 분명 질 좋은 화강암으로 빚은 훤칠하고 미끈한 석탑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큰 화재로 얼룩덜룩 검붉은 색으로 변했고 도굴꾼에 의한 훼손도 심하다. 해체 보수와 보존 처리 과정에 새로운 부재가 많이 보강되었지만 깊은 상처를 숨길 수는 없다. 차마 위로의 말도 건네지 못하고 데면데면 바라보다 마당에 핀 햇살 가득 품은 여름 꽃을 마주한다. 봉숭아, 백일홍, 원추리, 메리골드가 왕성한 생명력을 뿜어낸다.
이다음 삼층석탑을 찾아오면 이름도 바뀌어 새 푯말을 달고 있을 것이다. ‘덕산사 삼층석탑’으로. 그땐, 제 몸의 상처를 보듬어 오랜 시간을 견뎌 온 아름다운 탑을 품어 줄 수 있으리라. 소나기가 다시 한줄금 내린다. 제법 기세가 좋다. 배혜숙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