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0년 가을 쯤으로 기억된다. 1년간 GOP 철책근무를 마치고 인제군 서화리의 훼바(FEBA, 전선과 맞닿은 최근접 후방지역)로 내려와 헬기 탑승훈련을 받던 날이다. UH1H 미군 헬리콥터가 타타거리는 숨소리로 바람을 휩쓸며 내려앉는 순간 뜻밖의 모습이 눈앞에 확 들어왔다. 기체에 장착된 M60 기관총에서 손을 떼더니 우리에게 어서 올라 타라고 두 팔 들어 손짓하는 헬기 안의 미군병사가 보였다. 놀랍게도 여군이었다. 그 무렵만 해도 여군이라 하면 간호나 행정 말고는 맡을 일이 없는 군인이라고 나는 믿고 있었다.
그로부터 10년이 채 안 된 1989년, 우리 군도 여군 병과를 해체하고 7개병과에 두루 여군들이 배치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1997, 1998, 1999년에 걸쳐 공사, 육사, 해사의 순으로 여생도의 입학도 시작된다. 여군창설 70주년인 지난해에는 전체 여군 규모가 거의 1만3000명에 육박했다. 내가 몰랐을 뿐, 자료를 찾아보니 여군 공수요원도 1969년에 이미 9명이나 탄생했고 1981년 최초의 여군 헬기 조종사도 나왔으며, 2002년에는 전투기 조종사도 나왔다고 한다.
여군은 이미 우리 군의 당당한 일익을 맡고 있다. 이런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여군을 보조적 역할로만 인식하는 수준 이하의 문화를 가진 군 간부들이 문제이다. 수준 이하의 성문화도 당연히 뒤따른다. 부사관부터 장성급에 이르기까지 덜떨어진 그 간부들의 장난질이 애먼 여군들의 생명을 하나, 둘 계속 희생시키고 있다. 추잡한 자기 욕망을 채우려 더러운 습관을 생각 없이 반복한다. 더 큰 문제는 그들의 행태가 주변으로, 동료나 하위 구성원으로 전염되고 오염된다는 점이다.
어디든 남녀 간의 문제는 워낙 미묘한 것이기는 하다. 그러나 군대 성폭력의 가해자들은 대부분 기혼자 연배가 압도적이다. 그런 자들의 성적 노리개 짓은 묻고 따져볼 여지도 없는 범죄행각이다. 만에 하나 남녀의 애정관계만 문제 삼아야 할 경우가 있다 하더라도, 상대방이 정색하고 불편과 고통을 호소하는데도 못된 짓을 계속하며 호소를 묵살하는 행태는 필벌하여야 한다. 집행유예 등 군사법기관의 온갖 솜방망이 처벌 유형도 단호히 근절해야 한다. 군부의 수뇌가 그 성패에 직을 걸어야 한다. 요체는 모든 단위부대 최고책임자의 책임을 엄중히 제도화하는 것이다. 그럴수록 사고의 은폐를 유도한다는 주장은 비겁한 자들의 꿍꿍이이다. 정당한 문제의식이 담보되는 강고한 대안에는 저항이 그리 오래갈 수 없다. 특히 군대조직은 상명하복의 극단적 전형이다. 단위부대장의 각성된 의지와 끈질긴 실행력이 부패든 성폭력이든 결정적인 쐐기가 될 수 있다. 조직위계를 따라 책임자의 연쇄적 문책구조 강화가 급선무이다.
그리고 근본적으로는 군을 포함해 사회 전체에 만연한 약자수탈의 갑질의식을 쇄신하고 오히려 약자를 배려하는 기풍이 진작에 있어야 한다. 사실 성도덕을 포함해 모든 도덕의 근본은 상대방에 대한 배려에서 시작된다. 상대가 한사코 불편을 호소하는 데도 꾸역꾸역 제 욕심을 강요한다면 그것은 이미 군인 이전에 인간이기를 포기한 자들이다. 그런 자들이 어디를 지키고 누구를 보호할 것인가?
그런데 배려란 상대적 강자나 여유있는 자만이 할 수 있는 선행이다. 강자를 위한 약자의 양보는 배려가 아니고 굴복일 뿐이다. 문명시대 이래로 생태계 최종 포식자인 인간만이 자연의 동식물과 생태균형을 보호하고 배려할 수 있으며, 건장한 성인남성만이 사회적 열세자인 장애인·아동·여성·노인을 최종적으로 배려할 수 있다. 인간적 가치의 면에서 그런 상호관계를 바르게 인식하고 삶 속에 실천하려 애쓰는 것이 인간으로서의 책임과 의무이자, 자존의 특권이기도 하다. 이 대원칙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좀스럽고 탐욕만 가득 찼거나 두뇌의 어딘가가 아픈 사람으로 나는 치부한다. 서양의 노블레스 오블레주도 바로 여기에서 출발한다.
물론 약자를 배려하거나 정의를 구현하는 사회적 기풍을 이제 와서 불러일으키기가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이를 포기하고는 우리 공동체의 밝은 미래가 없음도 분명하지 않은가.
유영국 울산과학대 교수·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