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반구대암각화’의 신화는 계속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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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반구대암각화’의 신화는 계속 된다
  • 홍영진 기자
  • 승인 2021.08.19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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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영진 문화부장

1977년 경기도 연천군 한탄강에서 일어난 일이다. 세계고고학지도를 바꾼 구석기유물이 나왔다. 당시의 정설로는 도저히 나올 수 없는 유물이 한반도에서 발견돼 학계를 뒤엎은 사건이다. 바로 ‘연천 전곡리 유적’(사적268호)에 얽힌 일화다.

처음부터 진귀한 유물은 아니었다. 발부리에 채이는 수많은 돌덩어리 중 하나였다. 이를 허투루 보지않고 유심히 살폈던 사람은 한국인이 아니었다. 그렉 보웬이라는 당시 주한미군 상사였다. 보웬이 그럴 수 있었던 건, 그가 가진 짧은 고고학 지식 때문이었다. 고고학 강의를 들었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인 여자친구와 데이트를 나와서, 추위를 피하자며 화톳불로 커피를 끓이려고 돌을 주워 모으다, 책에서 본 ‘주먹도끼’와 흡사한 돌을 거머 쥔 것이다. 그는 거기서 그치지않고 몇몇 돌을 미국에 있는 교수에게 보냈다. 이를 본 교수는 한국의 고고학자 김원용을 찾아가라고 알려줬다. 이듬해 4월부터 서울대학교박물관이 나서서 장장 10년에 걸쳐 그 일대를 샅샅이 발굴했다. 보웬의 경험과 호기심에서 시작된 이 일로 4000여개 석기유물이 추가발굴됐다. 임진강 유역 60여개 구석기유적으로 확대되는 기적을 낳았다.

제대후 고고학자로 살던 그는 27년만인 2005년, 한국땅을 다시 밟았다. 연천군청이 구석기축제를 개최하며 그를 초청했다. 함께 온 한국인 아내는 ‘위대한 발견’에 함께 했던 그 옛날 한국인 여자친구였다. 2009년 보웬이 죽자, 아내 상미 보웬은 2011년 전곡선사박물관 개관식에 홀로 참석 해 보웬의 유품을 박물관에 기증했다.

전곡선사박물관은 선사유적에 세워진 박물관 같지않다. 소재와 디자인 면에서 독특함을 자랑한다. 표면이 은빛으로 빛나는 건축물은 숲 위에 떠있는 우주선이 연상된다. 이를 제안한 국제설계공모 당선자는 프랑스 디자이너였다. 흔히 ‘석기시대’ 하면 움막부터 떠올리는 평범한 발상을 뒤엎는다. 건축가들이 현대건축 기행지로 이 곳을 다녀 갈 정도다. 수만년 전 선사의 숨결이 앞으로 다가올 우리의 우주시대로 이어지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한다.

올해는 반구대암각화가 발견(학계보고) 된 지 50주년이 되는 해다. 연천 전곡리의 주먹도끼가 한반도의 구석기를 대표하는 기념비적 유물이라면 우리의 반구대암각화는 한반도의 신석기를 대표하는 상징적 유물이다.

연초에 시작했던 기획물 ‘반구대암각화 발견 50년-그동안 우리는 무엇을 했나’가 여전히 이어가고 있다. 애초에는 상·중·하 3편 정도로 마무리 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글과 말이라는 것이 그렇지 않다. 하면 할수록, 쓰면 쓸수록 계속 늘어만 간다. 없었던, 몰랐던 이야기가 자꾸 나온다. 새로운 일도 많았다. 반구대암각화가 잠정목록에 오른 지 10여년 만에 우선등재목록에 오른 것이 올해 연초다. 3차례나 반려·취소되던 명승지정도 이어졌다. 요즘도 어찌할 수 없는 힘에 끌려다니듯 이 사람을 만나고, 저 사람도 만나면서, 새로운 이야기를 계속 이어가고 있다.

연재를 처음 시작했을 때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 새로운 게 있겠냐”고 걱정하던 이들이 있다. 하지만 업무가 많아 사람을 만날 시간이 부족할 뿐, 욕심 같아선 반구대암각화에 올인해 더많은 사연을 기록으로 남겨야 하는게 아닌가하는 생각마저 든다. 한 대곡리 주민은 “암각화 역사가 7000년이라는데, 이제 겨우 50년을 지켜봤으니,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이야기가 쏟아질 지 궁금하다”고 했다. 짧은 경험으로 전세계 고고학계를 뒤집어놓은 보웬처럼 언제가는 반구대암각화에 대해 우리가 알고있는 지식과 애정으로, 어느날 갑자기 새로운 문명사의 빗장을 풀게 될 지도 모르겠다. 이번 주는 또다른 이야기를 찾아볼까 한다. 7월 출범한 반구대암각화 세계유산등재추진단부터 방문해야겠다.

홍영진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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