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스탄불을 상징하는 랜드마크를 꼽으라면 누구든 그 첫손가락에 성 소피아 사원을 꼽는데 주저할 사람이 없을 것이다. 이스탄불 도시경관의 독특함과 아름다움은 바로 소피아 사원에서 기원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건축적 걸작을 이스탄불의 랜드마크라는 차원에서 평가하는 것은 너무 편협한 시각이다. 그것은 터키 전체를 아우르는 국가적 문화유산이며, 비잔틴 문명을 대표하는 역사유산인 동시에 기독교와 이슬람교를 초월하는 종교적 유산이며, 나아가 인류 역사의 빛나는 문화유산이기 때문이다.
성 소피아 사원(Hagia Sophia)은 ‘성스러운 지혜’라는 뜻의 기독교 교회로 시작한다. 이 위대한 역사를 시작한 군주는 6세기 동로마 제국의 황제 유스티나아누스 1세다. 그는 서로마제국의 멸망으로 빼앗겼던 영토의 많은 부분을 수복함으로써 로마제국의 영광을 부활시키려했던 군주다. 새로운 제국의 수도가 된 이곳 콘스탄티노플에서 가장 신성한 ‘하느님의 집(Domus Dei)’을 지어 로마제국의 영광과 정통성을 계승하려 한 것이다. 로마인들이 발전시킨 최고의 건축적 기술과 형식을 담아야 했다.
로마인들은 하늘로 향하는 신성한 공간을 표현하기 위해 돔이라는 둥근 지붕을 발전시켰다. 돔으로 거대한 둥근 천정을 만들 수 있었고, 이로써 무한하게 뻗어나가는 하늘의 이미지를 표현할 수 있었다. 돔 지붕을 만드는 기술은 2세기 경 로마에 판테온(pantheon)을 건설하는데 사용되었고, 돔 천정을 갖는 공간의 신비로움도 경험했었다. 이러한 공간은 4세기경부터 교회건축에 적용되기 시작했다. 평면상으로는 구심적이며, 단면상으로는 수직적 공간을 만든 것이다. 예수가 인간 세상에 강림할 때를 대비하여 하늘과 땅이 만나는 특별한 장소를 표현하기 위함이었다.
소피아 사원은 이러한 수직축 위에 제단으로 향하는 수평축을 절묘하게 결합시켰다. 직사각형 평면을 통해 제단으로 향하는 수평축을 만들었고, 중앙부에는 돔 천정을 두어 중심성과 수직축을 만들었다. 다만 중앙 돔 천정의 앞뒤로 다시 반원형의 돔 천정을 덧붙여 직사각형 평면에 대응하도록 했다. 여러 개의 작은 보조 돔들이 중앙의 돔을 향해 상승하면서 통합되는 기법을 구사한 것이다. 자칫 단조로울 수 있는 중앙 집중형 공간을 변화무쌍하고 역동적인 공간으로 만들었다. 뿐만 아니라 낮고 험난한 공간들을 통과한 후에 도달할 수 있는 천상의 공간이라는 교리를 상징하기에도 적절한 연출이었다.
중앙의 돔 공간은 좌우 갤러리로 둘러싸여 더욱 강조되고 풍부해진다. 2층으로 구성된 갤러리는 열주와 아치로 아케이드를 구성하여 돔 공간을 중정처럼 느끼게 만들었다. 아치 사이로 갤러리 교차 볼트(cross vault) 천정의 화려한 장식이 슬쩍 감추어진다. 작은 아치들은 큰 아치로 통합되어 돔을 지탱하게 된다. 크기도, 모양도, 위치도 다른 아치들이 패턴이 되어 돔으로 귀결되는 것이다. 갤러리 2층에서 오감으로 느껴지는 공간감은 그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현란한 신비로움이다. 그리스, 로마시대의 신전이 그 외형적 모습을 ‘겁나게’ 만드는데 치중했다면, 하지아 소피아는 하느님과 만나기 위한 거룩하고 신비로운 장소를 만드는데 집중했다고 볼 것이다.
거대한 돔 천정은 뼈대를 만들어 지탱했다. 판테온에서 두꺼운 벽체를 만들어 지탱한 것보다 한 단계 발전한 기술이었다. 뼈대 사이에 벽돌을 채워 돔의 무게를 줄였을 뿐 만 아니라 뼈대 사이에 창문을 낼 수도 있었다. 돔 하부의 측벽에도 많은 창문을 뚫어냈다. 사방에서 들어오는 스테인드글라스의 빛이 볼트와 돔의 황금모자이크에 반사되고, 벽체 대리석에 반사되어 신비스러운 광채로 빛나게 했다.
1453년 이슬람교를 신봉하는 오스만 투르크족이 콘스탄티노플을 함락시켰을 때 그들은 이 위대한 걸작을 파괴하지 않았다. 정복자 메흐메트는 이 성당을 돌아보면서 “바닥에서 천정으로 시선을 옮기면 하늘에 가득한 별을 볼 수 있고, 천정에서 바닥으로 시선을 움직이면 파도가 일렁이는 바다를 보는 것 같다, 가히 천국의 돔과 견줄 만하다”고 경탄했다. 그는 이 교회를 즉각 왕실모스크로 개조하도록 명령했다. 하지만 이슬람 사원으로 사용하기 위해서 내부에 약간의 변경이 있었을 뿐 구조와 형태는 원전을 그대로 보존했다.
수세기가 지나는 동안 이슬람 군주 술탄들은 소피아 사원을 존중하고 유지했다. 물론 구조를 보강하거나 첨탑(미나레트)을 추가하는 등 약간의 보완이 있었다. 네 모퉁이에 첨탑이 세워진 것은 16세기 말이었다. 그러나 건축형태의 기본 골격과 공간구성은 크게 달라진 것이 없었다. 투르크인들은 재생에 천부적 재주가 있었던 모양이다. 마치 애초부터 모스크로 디자인된 것처럼 자연스럽게 재생했다. 그들은 재생에서 그치지 않고 이후 터키 모스크 건축의 원전으로 삼아 이를 계승했다. 모름지기 범종교적 융합과 계승을 이루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거대한 돔과 뾰족한 첨탑들이 어우러진 모스크들은 이스탄불의 독특하고 아름다운 스카이라인을 만들었다. 그 건축적 양식의 원조가 성 소피아 사원이라는 점은 틀림이 없지만, 그것으로 이스탄불을 만든 것은 분명 투르크인들이다. 대개 정복자들은 피정복지의 유산을 경시하게 마련이다. 때문에 위대한 문화적 유산들은 약탈과 파괴의 대상이 되곤 했다. 하지만 투르크인들은 달랐다. 그들은 걸작을 알아보는 수준 높은 안목, 차이를 포용할 줄 하는 관용, 원전을 존중하면서 자신의 삶에 적합하도록 바꾸는 개조와 개선의 지혜를 갖춘 사람들이었다. 이스탄불의 아름다움은 바로 포용과 공존, 습합적 지혜가 만들어낸 결과가 아닌가.
강영환 울산대학교 명예교수·건축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