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통령 소속 자치분권위원회가 발표한 올해 자치분권 시행계획의 핵심은 재정분권을 강력히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8대2인 국세와 지방세 비율을 7대3을 거쳐 6대4로 개편하고 지방재정 부담 완화 및 자율성 확대를 위한 국고보조사업 개편이 기본방향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국고 보조사업의 기준보조율 체계 개선은 더디기만 하다. 아니 의지가 있는지 의문스럽다. 지방자치가 부활한 지 30여년이 지났지만, 지자체는 재정적인 측면에서 여전히 중앙정부에 예속되어 있다.
또한 코로나19 등 어려운 여건 속에 국가 보조사업의 지방비 부담 증가와 재원의 지원이 없는 국가사무의 지방이양 등으로 지방재정이 더욱 악화되는 현실을 정부는 애써 외면하고 있는 듯 보인다. 대다수의 국민은 국가가 전액 긴급재난지원금을 집행한다고 알고 있겠지만 사실은 전 국민에게 지원하는 긴급재난지원금은 전액 국비가 아니라 지방비가 매칭되어 지급된다. 무너지는 서민경제의 모세혈관에 수혈해야 할 알토란같은 지방비가 중앙의 정치적 결단에 따라 블랙홀에 빠지듯 사라지는 상황이다. 지방예산은 주민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써야하는 최소한의 재원이다. 정작 지자체 주민이 마셔야 할 우물은 마르고 곳간은 비어가는 모양새다.
울산 남구의 경우 지난해 5월 전국민재난지원금 지급에 26억여원의 예산을 썼다. 또 올 2월에는 울산형 재난지원금으로 세대당 10만원씩 지급할 때 지원액의 30%인 41억여원을 예비비로 긴급 집행했다. 올해 추석 전 지급을 목표로 하는 5차 재난지원금도 남구에서는 87.7%에 해당하는 25만명에게 지급된다. 지방비 분담액의 25%인 30여억을 구비로 부담해야 한다. 남구의 가용재원이 한해 100억원 안팎인 것을 감안하면 한 해에 재난지원금에만 70억~80억원의 구비를 집행해야 한다. 예산이 부족해질수록 주민을 위한 행정이 제대로 돌아갈리 만무하며, 구 살림살이도 그만큼 더 팍팍해질 것이라는 것도 한눈에 알 수 있다. 광주와 대전의 경우를 살펴보면 지난해 정부재난지원금을 광역자치단체가 모두 부담했다. 울산시도 올해 초 울산형 재난지원금에 구비 30%를 분담시키면서 약속했던 대로 이번 국민재난지원금은 전액 시비로 충당해야 마땅하다.
전대미문의 코로나 팬데믹 시국이다. 대응방식도 전무후무할 수 있다고 치자. 하지만 정부 차원의 지원금으로 알고 있는 주민이 대다수인데 남구예산을 다루는 소관 상임위 의원으로서 납득이 잘 가지 않는다. 긴급한 위기를 관리할 총체적 책임을 진 정부는 통제식 방역정책만으로 국민 경제활동을 묶은 채 소액의 재난지원금만 전 국민에게 살포하는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과연 지금 정부 대응방식이 국민에게 엄청난 도움이 될지, 되고 있는지 묻고 싶다. 실질적 피해를 보는 소상공인과 국민은 살려달라고 아우성이다. 훌륭한 정책, 그럴싸한 정책은 차고 넘친다. 하지만 사후 피드백이 제대로 되고 있느냐를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만 정책 방향을 정확히 잡고 문제점을 수정해 나갈 수 있다. 그것이 바로 국민과의 소통이다. 전국민 재난지원금의 지급 방식은 그럴듯하게 잘 포장되어 있는 듯 보이지만 자세히 안을 들여다보면 시쳇말로 아이 코 묻은 돈까지 앗아가는 형국이다.
기초자치단체의 살림은 중앙정부와 광역단체의 재정력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큰 차이가 난다. 가용재원의 규모 또한 비교 대상이 아니다. 매출규모에서 재벌의 100억원, 중소기업의 10억원, 자영업자의 1억원이 차지하는 비중과 체감도가 다르듯 자치단체 간에도 동원 가능한 재정력의 차이가 엄연히 존재한다.
가뜩이나 울산 내에서도 재난지원금 지원과 관련해서 더주고 덜주는 상황 속에서 시민간 반목이 나타나고 있다.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것도 우려스러운데 중앙정부까지 지방비 부담을 주는 이러한 지원정책은 반드시 재고되어야 한다.
안대룡 울산 남구의회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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