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태풍 오마이스(omais)가 간밤에 지나갔다. 그 녀석이 주위를 어슬렁거리는 동안 하늘에서 한동안 천둥 번개가 치고 비가 쏟아붓듯 했다. 창밖 가로등에 비치는 빗줄기를 한참 보았다. ‘희부윰’(조금 흰 듯하고 부옇다)하게 밝아올 때쯤 그치는 듯했다.
학교 둘레를 한 바퀴 돌았다. 풀이 우거져 무성하던 여름 강이 황토물을 넉넉히 품고 흐르고 있다. 구량천이 으르렁거리며 품었던 기운을 한껏 내뿜고 있다. 동네 아지매 몇이 구량 다리에 나와 살아 꿈틀대는 강물을 보고 있다. 이미 논밭에 다녀온 모습이다. 논에서 막 돌아온 듯한 한 아지매가 자그마한 통발을 보여준다. 옆에서 살펴보던 아지매가 “뭐 잡혔나? 뭐 아무것도 없네!” 그러자 눈앞까지 바싹 들이미신다. 미꾸라지 서너 마리가 통발 안에서 이리저리 야단이다. “추어탕 한 그릇은 나오겠네. 사이좋게 영감 할매 나눠 묵어라.” 강 상류를 바라보니, 맞은 편 저 멀리 고헌산이 푸르게 씻은 얼굴을 하고 구름 속에서 굽어보고 있다.
큰물 구경 혼자 하기 아까워 아직 잠에서 덜 깬 몸으로 아침을 운동을 끝낸 아이들에게 학교 앞 강 구경을 가자 했다.
가는 비가 내리듯말듯하니 여학생 서넛과 남학생 둘만 그러자고 나선다. 구량 다리까지 갔다 돌아오기로 했다. 강을 끼고 걷는 내내 물소리가 씩씩하다.
다리 위에서 한참 멀거니 구경만 하자니 뭔지 모르게 섭섭한 마음이 올라왔겠지. 훈이가 혼잣말인 듯 “이런 물은 들어가 막 놀아야되는데.” 우리 모두 들뜬 목소리가 돼 “그래, 그러면 정말 좋겠다. 그러면 을매나 재밌겠노!” “울주군수님에게 우리 학교 앞에서 구량 다리까지 물놀이터로 만들어달라고 건의해보자.” “이렇게 큰물이 질 때는 래프팅도 할 수 있고. 저 아래 큰 다리 밑 어디에는 아래로 더 이상 안 떠내려가게 안전장치를 단단히 만들어 두고. 저 위에서부터 물길 타고 저 아래까지 내려가면 얼마나 신나겠나!” 내년에 혹시 일어날지도 모를 엄청난 물놀이를 상상하며 걸었다. 이렇게 한꺼번에 쏟아지는 온갖 재미난 생각들로 이미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인듯 우리들 몸은 들썩였다.
새벽에 밖을 나와 학교 안을 한 바퀴 돌았다. 기숙사 동과 학습동을 잇는 복도가 새어 들어온 빗물로 번득이고 있다.
태풍이 지나고 나면 학교는 어딘가 비가 새어든다. 어느 해에는 사십 년 더 된 교무실이 물바다가 돼, 책이 몽땅 젖기도 했고. 일주일 간격으로 이어 온 두 개의 태풍으로 4층에서 1층까지 한 라인의 교실이 물바다가 돼 비청소 하느라 고생한 적도 있다. 사감 샘과 비 청소를 했다. 빗자루로 빗물을 쓸어 쓰레받기에 담으며 ‘어찌 학교는 큰비에 약한가?’하고 생각을 해본다.
오래된 절이 비에 젖었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오래된 성당이 새어들어 온 빗물로 곰팡이가 슬었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가뭄에도 큰물에도 강은 넉넉하다. 그래서 넓고 길게 흐른다.
신미옥 울산고운중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