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숙칼럼]‘뷰포인트’ 발굴이 관광산업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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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숙칼럼]‘뷰포인트’ 발굴이 관광산업의 시작이다
  • 정명숙 기자
  • 승인 2021.08.31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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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명숙 논설실장

어느 작가의 사진 한 장 때문에 전남 화순의 운주사를 찾아간 적이 있다. 책에서 본건 누워 있는 불상을 머리 쪽에서 찍은 사진 한 장이었지만, 대충 만든 듯한 탑과 불상들이 무심하고도 무질서하게 늘어서 있는 운주사가 얼마나 감동적이었던지, 그 뒤로도 몇 번이나 방문했다. 충주 탑평리에 있는 중앙탑도 그랬다. 절집도 없이 강변에 우뚝 서 있는 사진 속 칠층석탑이 꽤나 먼 거리를 달려가게 했다. 때마침 비갠 서쪽 하늘의 붉은 노을을 배경으로 무소의 뿔처럼 당당하게 서있는 석탑은 황홀했다. 별다른 관심도 없었던 충주를 구석구석 돌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충주가 매력 있는 도시라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가슴 속엔 언젠가 가보고 싶은 사진들도 몇 장 저장돼 있다. 일본 전통마을 시라가와고(白川鄕)는 그 중 하나다. 두 손을 합장한 듯 뾰족한 지붕(갓쇼즈쿠리 合掌造)에 눈이 소복이 내려앉은 마을 사진을 보는 순간 겨울여행지로 마음속에 자동저장됐다. 쿠바를 가려고 작정한 것도 말레콘 성벽에 아무렇게나 걸터앉아 일몰을 기다리는 관광객들 때문이다. 직육면체 콘크리트 2711개가 도열해 있는 베를린의 메모리얼파크도, 해안가 언덕 위로 빼곡히 자리한 하얀 지붕의 산토리니도, 고요한 햇살이 담긴 건축가 르꼬르뷔지에의 롱샹성당도, 한 장의 사진만으로 짐을 꾸리게 하는 여행지다.

‘한장의 사진’들이 SNS를 타고 많이 돌아다녀야 관광객이 몰리는 시대다. 어쩌면 여행은 한 장의 이미지를 가슴에 담는 일이기 때문이다. 나름의 프레임으로 한 장의 이미지를 가슴에 담기 위해 우리는 휴대전화를 들고 수많은 사진들을 찍는다. 뷰포인트 개발이 관광산업의 절대 요소가 되는 이유다. 하지만 지난 2016년 울산시가 만든 ‘울산12경’처럼 반구대, 대왕암, 울산대공원과 같이 무미건조하게 장소만 나열해서는 뷰포인트가 되기 어렵다. 태화강국가정원을 가장 아름답게 볼 수 있는 시간과 장소는? 옹기마을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계절과 장소는? 간절곶의 일출을 가장 멋지게 감상할 수 있는 장소는? 대왕암의 매력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장소는? 반구대 암각화를 가장 선명하게 볼 수 있는 시간과 장소는? 자연이든 인공이든 뷰포인트는 장소만으론 충분치 않다.

옛사람들은 아름다운 풍경을 정할 때 어김없이 날씨, 시간, 장소 그리고 주변의 움직임까지 함께 지정했다. 시공간이 맞아떨어져야 비로소 감성까지 담아내는 진정한 풍경이 되기 때문이다. 염포귀범(鹽浦歸帆 돛을 단 고기잡이배가 그림처럼 떠 있는 염포), 서생모설(西生暮雪 서생포 왜성에 눈 내리는 풍경), 문수낙조(文殊落照 문수산에서 바라보는 석양), 삼산낙안(三山落雁 기러기떼가 내려 앉은 삼산평야), 태화어간(太和漁竿 낚싯대가 드리워져 있는 평화로운 태화강), 무룡산조(舞龍山朝 무룡산 기슭에 막 떠오르는 일출), 학성세우(鶴城細雨 봄을 알리는 가랑비가 흩날리는 학성), 백양효종(白楊曉鐘 적막을 깨고 은은하게 들려오는 백양사의 새벽 종소리). 광복 후 지정한 신울산팔경이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가 제시된 뷰포인트 발굴이 관광산업의 시작이다. 그렇다고 전망대를 세워서 해결할 일은 아니다. 때와 시를 고려하지 않고 높이 올라간다고 해서 뷰포인트가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서울 남산을 볼 때마다, 고속도로를 타고 양산을 지나갈 때마다, 울산의 남산에도 볼썽사나운 전망타워가 세워질까 걱정이 앞선다. 울산의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있는 뷰포인트는 지금도 수두룩하다. 남산에 있는 여러 누각, 성안동의 함월루, 간절곶의 전망 좋은 언덕, 태화강국가정원 은하수다리…. 굳이 수백, 수천억원을 들여 멋없이 높기만 한 전망대를 건립할 이유는 없다. 여러 곳에서 소박한 뷰포인트를 찾아내고 접근성을 높이고 홍보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내 컴퓨터의 배경화면은 수천마리 백로가 날고 있는 태화강 국가정원의 대숲(본보 8월4일자 1면)이다. 김동수 기자가 드론으로 찍었다. 맑은 날 이른 아침 남산 전망데크에 올라가면 한눈에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컴퓨터를 열 때마다 ‘울산이 이런 곳이야’라고 널리 자랑하고 싶다.

정명숙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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