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박상진 의사 순국, 그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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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박상진 의사 순국, 그 후
  • 경상일보
  • 승인 2021.09.02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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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영훈 울산MBC 편성제작국 PD

올해가 박상진 의사 순국 100주년이다. 독립운동을 시작하기 전, 박 의사는 당시 송정, 농소, 경주 녹동 일대의 땅이 거의 자기 소유라고 할 정도로 거부였다. 양정의숙을 졸업하고 판사 등용시험에 합격해 평양지법 판사로 발령받았다. 부와 명예를 모두 가진, 남부러울 게 없는 처지였다. 그런데도 그는 세인이 부러워하는 그 좋은 출세의 기회도 버리고, 그 많던 재산도 독립운동에 모두 바쳤다.

일제강점기에 친일파였던 자들과 그 후손들은 지금도 말한다. “당시 먹고 살려면 친일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일본인이 운영하는 회사, 관청에서 일하지 않으면 어떻게 살 수 있었겠는가?” 만약 박 의사 같은 분이 없었다면 우리는 “그럴 수도 있겠다”라며 고개를 끄덕였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직업에 종사했느냐가 아닌 어떤 행위를 했느냐의 문제다. 자신의 목숨까지 나라를 위해 헌신한 박 의사 같은 분도 있었음을 알면 친일파의 그런 말이 자기변명에 지나지 않음을 금방 알 수 있다.

1917년, 박상진 의사는 당시 독립자금 모집에 협조하지 않은 친일부호 장승원 등을 처단한다. 이를 계기로 그는 체포돼 사형선고를 받고 서른일곱의 나이에 순국했다. 장승원의 셋째 아들은 해방 후 수도경찰청장과 국무총리를 지낸 장택상이다. 광복 후 독립투사 박상진의 후손들과 장승원 후손들의 삶은 큰 차이를 보인다.

해방 후 남은 재산이 거의 없었던 박 의사의 유족들은 부산으로 이주해 부산 부암동에서 농사와 양계로 근근이 생계를 유지했다. 1960년대 초, 부산의 어느 신문에 충격적인 사진이 한 장 실린다. 광복회 총사령 박상진 의사의 부인, 최영백 여사가 굶어서 얼굴이 퉁퉁 부은 모습으로 판잣집에 누워있는 사진이었다. 이런 형편이니 증손들은 제대로 학교도 다니지 못했다. 증손자 박중훈은 집안이 어려워 대학 진학은커녕 부산상고도 겨우 졸업했다. 지금도 그들은 대부분 넉넉지 못한 삶을 산다.

반면에 장승원의 아들 장택상은 해방 후 수립한 이승만 정권에서 대한민국 최고 권력의 반열에 오른다. 그의 딸 장병혜는 이화여고를 졸업하고 미국 유학을 갔다. 그곳에서 결혼해 자식들을 소위 명문이라는 아이비리그 대학에 다 보낸다. 90년대에 장병혜는 훌륭한 교육가로 국내에 알려졌고 책도 출판하고 전국 강연회도 했다.

친일파의 후손들이 풍족한 환경에서 떵떵거리며 사는 것까진 그렇다고 하더라도 박상진 의사를 공격까지 하니 격세지감을 느낀다. 그녀는 1992년에 발간한 책에서 “일본인을 죽이지 않고 조선인을 죽인 박상진이 무슨 애국 투사냐?”라는 주장까지 했다. 박상진이 일본인을, 일본군을 죽이지 않았다고? 광복회 부사령 김좌진 장군에게 물심양면으로 지원하며 만주에서 무장투쟁을 하도록 이끈 이가 바로 박상진 의사이고 그로 인해 독립투쟁사에서 빛나는 청산리전투가 가능했던 것이 아닌가.

장병혜의 주장은 박 의사를 살인강도라고 한 당시 일제 재판부의 판결과 똑같다. 박 의사의 후손들은 당시에는 그런 일이 있었는지를 몰랐지만, 후에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특히 박 의사의 증손자 박중훈씨가 증조부의 항일투쟁 활동을 발굴하고 연구해 박 의사의 얼을 널리 알리는 한편 장병혜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박상진 의사의 독립운동 정신과 투쟁을 잊지 말아야 하지만, 박 의사 순국 이후에 후손들은 비참하다고 할 수밖에 없는 삶을 산 데 반해 박 의사가 처단한 친일파 후손들은 풍요롭고 여유 있게 산다는 사실도 우리는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올해가 박상진 의사 순국 100주년이지만 그의 투쟁이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부끄럽게 여기자.

이영훈 울산MBC 편성제작국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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