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관중은 관포지교의 고사로 유명하지만, 그의 정치적 능력과 업적은 중국사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들 만큼 크다. 관중은 동쪽 바닷가의 변변치 못한 나라였던 제나라의 재상이 되어 환공을 춘추의 패자로 만들어주고, 경제를 발전시켜, 사(士) 계층의 존재 기반을 만들어줌으로써 춘추의 설계자란 말을 들었다. 정치가 관중의 키워드는 ‘백성들이 바라는 바는 베풀어 주고, 백성들이 반대하는 일은 제거해 주었다’에서 찾을 수 있다. 관중의 귀는 항상 백성들에게 열려 있었고, 관중의 마음은 늘 백성들과 함께 하고 있었던 것이다.
관중은 정치를 ‘주는 것이 취하는 것임을 아는 것’이라고 했다. 주는 것은 싫어하고 갖는 것은 좋아하는 것이 사람의 속성이다. 주지는 않고 가지려고만 하다 보니 정작 자기 것을 통째로 잃어버리기도 하는 것이 우리네 삶의 현실이다. 한 고조 유방은 함양을 항우에게 내어줌으로써 항우를 이겼고, 왕건은 송악을 궁예에게 바침으로써 마침내 궁예를 몰아내고 통일된 후삼국의 첫번째 주인이 되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본거지를 토요토미 히데요시에게 받치고 멀리 관동의 땅 에도를 취함으로써 천하의 주인이 될 수 있었다. 내것을 흔쾌히 남에게 내어주고 더 큰 것을 취할 줄 아는 사람, 그가 관중이었다.
관중은 백성 곁에서 그들의 마음을 헤아려서 그에 맞게 정치를 했다. 현대는 여론정치의 시대라고 한다. 하지만 제대로 된 여론정치는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여론을 빙자한 정치가 횡행할 뿐이다. 관중은 이미 수천 년 전에 참된 여론정치를 실행했던 것이다. 관중은 주는 것을 서슴지 않았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가 누린 부(富)가 공실의 것과 비슷하였으나 제나라 사람들이 이것을 사치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관중이 죽은 후에도 제나라는 관중의 정책을 준수하여 항상 다른 제후국들보다 강한 국력을 갖출 수 있었다.
훌륭한 정치가는 그가 아무리 많은 지위를 누리고 부를 가져도 백성들이 그를 나무라지 않는다. 오히려 더 높은 지위를 주려고 하고 더 많은 부를 갖게 해주려고 한다. 왜냐하면 그의 지위가 높아질수록 그의 부가 늘어날수록 덩달아 백성들의 권익과 살림살이가 나아지기 때문이다. 요즘에는 백성들의 뜻과는 반대로 하거나 백성들에게는 주지 않고 자기만 취하려고 하는 정치가들이 많다 보니 세상이 늘 시끄러운 것 같다.
송철호 문학박사·인문고전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