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장과 교육감을 비롯해 집행부 주요 간부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임시회 1차 본회의장에는 5분 자유발언, 시정질문 등 각종 안건이 쏟아진다.
시의원들은 앞다퉈 사회·교육·경제·행정 각 분야에 대해 제언과 조언을 하며 나름의 시 발전방향을 제시하기 바쁘다. 5분 정도인 이 시간을 위해 시의원들은 50, 500시간에 걸쳐 자료를 수집하고, 현장 곳곳을 누비며 전문가들의 의견을 취합하고 시민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담아내는데 구슬땀을 쏟아낸다. ‘울산발전’이 공통분모인 여기에는 여야 구분도 없다. 하지만 그날은 달랐다.
제224회 임시회가 개회된 지난달 31일. 이미 오전부터 예고됐던 시정질문 1개가 1차 본회의 개의 이후 뜬금없이 철회됐다. 유사 사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의 장면이 본회의 당일, 그것도 본회의장 내부에서 벌어졌다. 발언대에 나온 이 의원은 “집행부 듣고 있지요”란 말을 곁들이며, 시정질문을 철회했다. 의사당에는 묘한 기류가 감돌았다. “왜 그랬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 의원은 “답변자료도 부실하다. 이래서는 시정질문 자체가 의미가 없다”고 했다.
“씁쓸하다” “같은편(?)인 여권도 이런데 야권은 오죽이나 하겠냐” 는 등의 반응이 의사당 안팎으로 흘러나왔다.
며칠 뒤 한 상임위원회 회의실. 또 다른 모 시의원이 울산시를 향해 최근 자신이 낸 서면질문과 관련, “답변자료가 부실하다”며 공식적으로 유감을 표명하는 상황도 빚어졌다. 분명, 시의원의 정책제안 의도와 대안제시 방향이 울산시의 판단과 결이 다를 수 있다. 문제는 협의과정의 아쉬움이다. 이런 장면은 다시금 재연되어서는 안된다. 집행부는 시의회와 소통채널을 보다 확대하고, 접촉빈도를 높여야 한다. 시와 시의회의 관계도 견제와 균형의 원리에 따라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
시장과 같은당이라고 무조건 앞뒤가리지 않고 시 입장만 대변하고, 짜여진 각본대로 움직일 의원들이 어디 있겠는가. 시장과 같은당이라고 의원들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판을 짜겠다는 집행부는 또 아니지 않는가. 시의원은 주민대표로 지역 주민의 눈과 입, 귀 역할을 한다. 그들의 행동 하나하나는 주민의 삶과 직결된다는 얘기다. 지방의회 출범도 30년을 훌쩍 넘겨 이제 성숙의 단계로 접어들었다. 의회 스스로 위상을 높이는 것 못지않게 집행부의 역할 또한 중요해졌다.
의회나 집행부에겐 1분 1초가 아깝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벼랑끝으로 내몰리는 소상공인·영세상인 지원, 경기회복, 집값 안정화, 일자리 창출, 청년 탈울산 대책, 또 다시 물에 잠긴 재래시장 등 …. 시와 시의회가 협의해서 풀어야 할 일이 태산이다.
바둑에는 패(覇)가 있다. ‘패’는 바둑판에서 한 판 승부를 짓는 중요한 단초다. 때로는 바둑판 승부를 제쳐두고 패싸움에 집착하는 경우도 있지만 패싸움을 잘해야 바둑에서 이기는 것이 상례다. 바로 지금 울산시의회와 울산시가 화합과 협력으로 ‘지방자치 의회와 행정의 모범’이라는 대마를 살릴 수 있는 있는 절묘한 패를 써야 할때다.
이형중 정치부 차장 leehj@ks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