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곤의 살며생각하며(21)]경쟁과 싸움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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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곤의 살며생각하며(21)]경쟁과 싸움의 차이
  • 경상일보
  • 승인 2021.09.08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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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상곤 칼럼니스트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이 적이 아니라 어제의 이웃들에게 무심한 표정으로 총을 쏘아댄다. 그들이 같은 동족들을 거리낌 없이 사살하는 이유를 정확히 알 수는 없다. 다만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미국인과 친하고 한국 기업에 다닌다는 이유가 사람을 죽여도 좋은 명분이 된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는가. 적의 친구는 적으로 간주해도 좋다는 종교적 믿음으로 무장한 그들의 세상은 이미 지옥이 되었다고 한다. 밑도 끝도 없는 그들의 증오가 얼마나 무서우면 비행기 바퀴라도 잡고 그 곳을 벗어나려 하겠는가. 자동소총 위에 장착된 그들만의 종교적 신념 앞에서는 인간의 목숨도 한없이 가벼운 표적일 뿐이다.

우리가 적을 만들어 내는 방법은 다양하다. 그 중에서도 종교적인 신념을 바탕으로 만들어 내는 적개심은 무섭고 잔혹하다. 특히 미움의 대상을 악으로 규정하고 직접 행동으로 실천하려는 시도가 얼마나 참혹한 결과를 가져왔는가는 역사가 말해주고 있다. 수많은 종교 전쟁이 그렇고, 남미 토착민의 절반 이상을 도륙한 스페인 정복자들도 종교적 신념으로 자기의 행동을 정당화했다.

역사 속에서 뿐만 아니라 우리 주위에도 유사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서울의 작은 교회 하나가 종교적 믿음을 지키기 위해 전염병의 위험을 무시하고 정부에 대항한다. 종교적 신념이 항상 나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삶과 죽음이 무엇인지 명확히 이해할 수 없고, 복잡한 세상의 원리를 하나하나 새기면서 살아가는 것도 불가능하다. 그래서 일상을 큰 혼동 없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단순하고 명확한 지침이 필요하다. 종교적 세계관이 지금까지 인간을 위해 기여한 긍정적인 역할도 질병과 죽음, 자연재해 등과 같이 인간이 어찌할 수 없는 일들을 명확하게 설명해 주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러나 문제는 종교가 유한한 생명을 가진 이웃에 대한 연민보다는 자신과 다른 누군가를 향한 적개심으로 생명력을 유지하려고 노력하면서부터 발생한다. 안타깝게도 종교 집단뿐만 우리가 사는 사회를 좀 더 나은 곳으로 만들겠다고 나선 정치 집단도 끊임없이 다른 집단에 대한 증오와 공격을 통해서 자기 내부의 결속을 다지는 일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선거가 마치 전쟁인양 상대방을 향해 할 수 있는 모든 비난을 스스럼없이 쏟아낸다. 무기가 손에 있으면 서로에게 총질도 마다할 것 같지 않다. 정치집단의 이러한 태도를 보노라면 우리 사회가 정말 선진 문명을 이룩한 나라가 맞는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나라를 세계 최고의 수준으로 만들겠다는 사람들이 마치 탈레반처럼 행동한다. 자신이 속한 집단을 위해 몸이라도 던지겠다는 듯이 결연하다. 그런 결연함에는 진보적인 가치를 주장하는 사람이나 보수적 가치를 지키겠다고 주장하는 사람이나 마찬가지다. 모두 투사가 되고 순교자가 되기로 작정한 것 같다. 자기 생각이 무너지면 마치 나라가 망하고 세상이 끝날 것처럼 말하고 행동한다. 무모한 종교집단과 조금도 차이가 없는 행태를 그들은 자신의 신념을 지키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다른 집단에 대한 미움에서 존속할 힘을 얻는 방법은 종교적 집단이나 정치적 집단이나 마찬가지로 그들이 추구하는 가치를 유지하는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역사적으로 이미 증명된 사실이다. 물론 가장 결합력이 강한 집단인 민족도 다른 민족과의 차별이나 배제를 통해 힘을 강화하기도 한다. 최근 끝난 올림픽에서 이웃 나라 여자 배구 팀을 이기는 장면은 수십 번을 봐도 질리지 않는 이유다. 그러나 민족과 민족이 서로간 미움을 직접적인 방법으로 해소하기 보다는 스포츠를 통해서 해소하듯이 선거판의 정치적 싸움도 너 죽고 나 살자가 아니라 모두 기꺼이 참여하는 놀이나 스포츠 같으면 좋겠다. 선거가 시민들의 일상에 불편함을 주지 않는 격조 있는 놀이가 될 수는 없는 것일까.

김상곤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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