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가 도심융합특구의 법적 근거를 마련하기도 전에 후보지부터 선정하는 앞뒤 바뀐 행정을 진행하고 있다. 주무 부처인 국토교통부는 뒤늦게 도심융합특구 특별법 제정에 집중하면서 5개 광역시 중 특구 미지정 지자체인 울산과 부산의 후보지 선정이 다음 정권으로 연기될 수 있다는 우려마저 제기된다. 정부의 행정 탓에 지역 갈등만 고조되고 있다는 지적도 일고 있다.
7일 울산시와 부산시 등에 따르면, 국토부는 지난해 9월 도심융합특구 조성 추진 계획을 발표했다. 지방 5개 광역시에 산업·주거·문화 복합 인프라를 갖춘다는 계획이었다.
국토부는 계획 발표에 이어 지난해 12월 광주 상무지구와 대구 경북도청 이전지 일원 등 2곳의 입지를 우선 선정했다. 이어 올해 3월에는 대전 충남도청 이전지를 추가로 선정했다.
가장 먼저 입지가 결정된 광주와 대구는 국비와 시비 등 6억원을 각각 투입해 도심융합특구 조성 기본계획 수립 용역에 들어갔고, 대전도 용역 발주를 진행 중이다.
그러나 국토부는 계획 발표 1년이 다 되도록 아직 울산과 부산의 입지를 선정하지 못하고 있다. 울산과 부산은 지역 국회의원 등의 반발에 따라 1·2순위 후보지까지 선정해 국토부에 제출했지만 국토부는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는 형국이다.
이에 대해 국토부가 지자체 추천 후보지 중에서 대상지를 선정하는 대신 지자체에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국토부는 지자체들이 후보지를 자체 조정한 뒤 심의 절차를 거치려 하는데, 그 과정이 지연되고 있어 연내 후보지 선정을 확답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지자체들이 갈등 관리·조정 단계를 거쳐 방향을 제시해야 후보지를 선택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미 지자체들이 최선과 차선의 후보지를 제출한 상황에서 국토부의 설명은 설득력이 낮다는 반론이 일고 있다.
이와 관련, 국토부에서는 후보지 선택 보다 관련 특별법 제정을 우선시하는 분위기가 감지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지난해 9월 특구 조성 발표 당시는 물론 입지 3곳을 선정할 때까지 도심융합특구와 관련된 법적 근거는 마련되지 않았다. 이에 국토부는 ‘도심융합특구 조성 및 육성에 관한 특별법’ 제정 작업을 뒤늦게 추진하고 있다.
지난 5월 세종시가 지역구인 더불어민주당 강준현 의원이 대표 발의한 ‘도심융합특구 조성 및 운영에 관한 특별법’은 현재 국회 상임위원회에 상정돼 있다. 용역 기간이 1년에 달하는 ‘도심융합특구 특별법 하위 법령 등 지역 맞춤형 도심융합특구 추진 체계 마련 연구’ 용역은 지난 5월 발주돼 하위법령 제정 속도는 더 늦다.
이는 관련 법안을 먼저 마련하고 세부 내용과 인센티브 등을 결정한 뒤 대상 지역을 선정하는 일반적인 절차와 상반된 것이다. 이를 두고 문재인 정부 임기 내에 사업을 조속히 추진하기 위해 무리하게 속도를 내다보니, 진행 순서가 바뀌어 오히려 발목이 잡힌 상황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법안 통과가 지연될 경우 특구 추진의 동력이 약화되는 것은 불가피한 상황이다. 특히 내년 대통령 선거와 지방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법안 통과는 물론 후보지 선정도 쉽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까지 일고 있다.
울산시와 부산시 관계자는 “계획 발표 이전부터 작업해 왔고 이후에도 국토부와 수시로 연락하고 있지만 후보지 선정은 여전히 불투명한 상황”이라며 “지자체가 후보지를 단일화하기는 쉽지 않다”고 밝혔다.
이춘봉기자 bong@ks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