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시론]도쿄올림픽과 비 금메달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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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시론]도쿄올림픽과 비 금메달리스트
  • 경상일보
  • 승인 2021.09.09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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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진원 K Classic 콘텐츠연구소 소장

우리는 그동안 ‘1등만 주목받는’ 세상에 살아왔다. 오직 한 명에게만 스포트라이트를 비추고 열광했다. 2등도 울고불고 3등은 관심 밖으로 사라져 버리던 세상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은메달과 동메달, 심지어 메달권에 들지 못한 4위에게도 4강이라고 칭찬을 하기 시작하였다. 여자 배구가 그러하였다. 비판받아 마땅했을 김연경 선수의 욕설도 ‘식빵’이라고 순화시키다 못해 ‘식빵모델’로 발탁되기까지 하는 것을 보고 그야말로 격세지감을 이럴 때 쓰는구나 싶다. 그들이 4강에 올라갈 때까지 함께 손에 땀을 쥐며 응원하게 되고 그들의 땀과 눈물과 노력을 공감하게 되었다. 어떤 친구는 재방송을 보면서도 너무나 엎치락뒤치락하는 바람에 재방송인 걸 잊어버리고 약속에 늦었다며 헐레벌떡 달려오기도 하였다.

아버지의 뒤를 이은 여서정 체조선수의 동메달도 은메달리스트였던 여홍철 선수까지 소환해 부녀의 진한 감동스토리를 눈물 글썽이며 보게 하였다.

유도 동메달리스트인 안창림 선수의 이야기도 훈훈하였다. 3대째 재일교포로 살면서 귀화하지 않고 한국인의 이름을 지키기까지 고단했을 사정들이 눈에 밟히지만 그것을 오히려 운동에 박차를 가하는 계로 삼아 메달로 승화시킨 20대 젊은 청년. 그의 구김없는 표정과 말투가 그래서 더욱 마음에 깊숙이 들어온다.

무엇보다 십대 양궁 소년 김제덕의 사자후, ‘코리아 파이팅’이 심금을 울렸다. 게다가 두 개의 금메달을 거머쥔 소년의 뒤에는 손자를 키워주신 연로한 할머니와 아픈 아버지가 있었다. 잘 자란 준 것도 고마운데 철도 일찍 들어 금메달로 효도하겠다는 꿈을 이룬 아기 사자의 앞날이 더욱 기대되는 까닭이다.

게다가 양궁 환상콤비를 이룬 스무살 대학생 안산 선수의 시크한 매력도 대단했다. 처음에 혼성이라는데 미소년과 미소녀 누가 누군지 한참을 들여다 봐야 할 만큼 둘다 반듯하게 잘생겨 안 선수는 때아닌 ‘페미 논쟁’에 휘말리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 금·은·동메달리스트의 비하인드 스토리보다도 사실은 대다수를 차지하는 노메달리스트의 이야기도 앞으로 비중있게 다루어졌으면 한다. 나아가 ‘패럴림픽’의 인간 승리도 하나하나가 금메달감이 아닌가. 살아만 있으면 의지만 있으면 장애도 장애가 아니라는 희망의 증거들이 우리 눈 앞에 온몸으로 증명하고 있다.

이즈음 이런 기사와 이야기를 접하다 보면 결국 그 눈길이 나에게로 향한다. 나는 인생 올림픽의 메달리스트인가 노메달리스트인가.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사회적 성공 기준으로 보면 당연히 노메달리스트이다. 대한민국에서 여성 인문학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우선 경제적으로 ‘준 백수’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늘 가족의 뒷바라지 속에서 ‘나이 들수록 빛이 나는 학문’이라는 신조 하나로 근근히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누군가는 나를 메달리스트라고 할 지도 모른다. 몇 권의 책을 써서 검색창에 이름을 치면 ‘작가’라고 뜨고 내 학문의 길을 가고 있으니 말이다.

그렇다. 세상에는 메달리스트보다는 노메달리스트가 많다. 우리가 그들과 함께 기뻐하고 흥분하고 희노애락을 같이 하는 것은 내 안의 금메달리스트도 있고 노메달리스트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서로가 서로를 인정해주고 잘하기를 기도하고 목소리 높여 응원하는 것은 내 안의 노메달리스트가 숨어있는 또 다른 금메달리스트를 호명하는 작업일지 모른다.

무엇이 금메달의 기준이란 말인가. 올림픽 정신은 정정당당하게 참여하는데 의미를 두고 있다. 최소한 내 인생에서만큼은 나를 ‘스피드나 높이나 멀리’라는 기준에 줄 세울 필요 없이 나의 속도대로 내 인생에 최선을 다해 참여하면 금메달인 것이다.

올림픽은 4년에 한 번이지만 나는 내가 원할 때마다 올림픽을 열 수 있다. 지금까지 노메달리스트였다고 생각하는 그대여. 오늘부터 한 달이고 6개월이고 1년이고 기간을 정해 마음 훈련을 하자. 그리하여 나만의 올림픽에 참가하시라. 메달 선택권도 당신에게 있다. 살아가며 누구나 한 번은 내 인생의 금메달리스트가 되어 볼 일이다. 김제덕 선수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파이팅!’

정진원 K Classic 콘텐츠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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