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절양장, 한계령을 오른다. 양희은의 ‘한계령’ 노래가 청아한 소리로 한 발 앞서 간다. 삶에 지친 이들을 담담하게 위무한다. 발아래 계곡은 깊은데 ‘우지마라’고 토닥이더니 탁 트인 한계령에선 애써 붙잡고 있는 것은 다 ‘잊어라’고 달래준다. 구름이 밀려왔다 흩어지는 고갯마루를 지나 한계사지에 닿는다. 한계사지는 국립공원이 엄격히 규제하는 곳이라 허가를 받아야만 발을 들일 수 있는 곳이다. 인연이 닿아야 이 산 저 산 눈물 구름을 이고 있는 한계사지의 쓸쓸함을 마주 할 수 있다.
숲을 조금 오르자 환하게 열리는 폐사지. 깨어지고 허물어진 부처님의 대좌, 광배와 석등 조각이 있고 금당 터의 주춧돌이 비스듬히 누워 있다. 무엇하나 성한 것이 없는데 보물 제1275호 남 삼층석탑만이 제 모습을 갖추고 나그네를 맞는다. 오래전부터 탑과 나 사이에 알게 모르게 장력이 작용했는지 그 앞에 서는 순간 법열의 환희가 느껴진다.
남 삼층석탑은 수줍은 새색시처럼 다소곳하다. 사바세계의 대중들이 쉽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숨겨둔 이유를 알 것 같다. 아래층 기단의 한 면에 세구씩 새겨진 안상무늬가 이 탑이 가진 최고의 장식이다. 그 마저도 실눈으로 바라보면 바람 길을 따라 일렁일렁 흔들린다.
북쪽으로 난 계단을 따라 숲속을 오르면 또 하나의 삼층석탑이 숨어있다. 보물 제1726호 북 삼층석탑이다. 남 삼층석탑과 달리 거친듯하나 늠름한 사내의 풍모다. 두 탑은 보는 맛이 확연히 차이가 난다. 같은 석공의 솜씨는 분명 아니다. 통일신라시대에 조성된 두 기의 삼층석탑은 등명 꺼지고 독경소리도 끊긴 첩첩산중의 절터를 꿋꿋하게 지키고 있다. 설악은 한계사지를 품고 그 중심에 선 삼층석탑은 벙근 꽃봉오리다.
시절이 하 수상하여 내려가는 것이 망설여진다. 발아래 깨어진 기와조각도 붙잡는데 저만치기암의 봉우리들이 ‘내려가라’고 가만히 어깨를 떠민다. 바람에 떠밀려 한계령을 내려온다. 오색석사에도 설악이 품은 어여쁜 삼층석탑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배혜숙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