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시론]카카오의 시행착오를 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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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시론]카카오의 시행착오를 보며
  • 경상일보
  • 승인 2021.09.23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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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영국 울산과학대 교수·정치학

카카오 같은 거대 플랫폼 기업들의 문어발식 사업 확장을 공정거래위원회가 결국 문제 삼기 시작했다. 카카오는 71개에 달하는 대기업집단 가운데 계열사 수로는 148개인 SK에 이어 2위에 올랐다. 공정위의 현황조사에 따르면 2017년 63개이던 카카오의 계열사 수가 2020년 97개로 불어나고, 올해에 118개로 늘어났다고 한다.

물론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에서 기업결합이나 특정 기업의 빠른 성장을 무턱대고 백안시할 것도 아니고 그러한 기업결합이 가져올 수 있는 혁신의 촉진이나 소비자 후생 증진의 가능성마저 부인해선 안 될 것이다. 공정위 스스로도 그런 점을 거론하며 정책결정의 신중함이 필요함을 스스로 밝히고 있다. 사실 디지털 혁명의 세례 속에 급속히 확산되는 온라인 플랫폼 기업들의 독점화는 그 자체 자본주의 경제 원리의 본질적 발현인 점에서 당연한 현상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당연함’에 경제적 미래의 위험 또한 분명히 내장되어 있다. 전통적인 시장 생태계와 달리 온라인 플랫폼이 등장한 이후로는 그 생태계의 구성 집단과 구성원리가 완전히 변하고 있다. 이제는 생산과 소비 사이에서 디지털 기반의 중계 플랫폼이 거래의 모든 데이터를 수집, 축적해 거대한 정보 자산으로 이용한다. 재화든 서비스든 그것을 생산하는 기업도, 구매하는 소비자도 모두 자신들의 거래기록을 움켜쥔 중계 플랫폼의 사업구상에 사냥감이다. 아마존과 구글이 그렇게 커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처럼.

이제는 소비자만이 아니라 플랫폼에 상품을 올려놓는 크고 작은 생산기업들, 배송 관련 직업군의 수많은 종사자들, 동네 골목상권의 자영업자들까지 복잡하게 얽힌 생태계의 먹이사슬 안에서 모두 플랫폼의 식민화 대상이다. 이들 모두 각자의 살길이 차단되지 않도록 국가는 ‘공정하게’ 관리해 가야 한다. 이번에 공정위가 카카오의 ‘폭식’을 눈여겨보지 않을 수 없게 된 것도 그런 배경 때문일 것이다.

흙수저 출신에, 재산의 절반을 사회 환원하겠다고 이미 공표한 김범수 카카오 의장이다. 알려진 그의 리더십 스타일을 보더라도 전통적 한국 재벌과는 다른 길을 걸을 것이라고 흔히들 기대해 왔다. “카카오는 우리나라 전 국민이 쓰는 서비스로, 사회에서 의미 있는 역할을 해야 한다. 단순히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의미도 가져야 한다. 새로운 사업을 하면서 기존 세력과 충돌은 불가피하다. 카카오택시에서 그랬듯이 기존 사업자들과 최대한 협력할 것이다.” 2016년 6월, 한 경제전문지와의 인터뷰에서 김범수 의장이 했던 말이다. 차량 호출, 미용실 예약, 꽃·간식·샐러드 배달 중개 서비스 등 전방위적 사업 확장으로 ‘골목상권 침해’ 논란에까지 휩싸였던 카카오의 현실을 보면 앞의 인터뷰에서 언급한 그의 선한 의지가 실제로는 제대로 관철되지 못한 듯하다. 최근 정부의 규제 움직임이 가시화되고 주가도 급락하자 부랴부랴 그간의 골목상권 침해 사업이나 모빌리티의 호출중계 등 각종 이권과 서비스를 접거나 수수료 인하 등으로 궤도 수정을 하고 있다.

왜 이런 시행착오가 나타났을까? 물론 시행착오든 실패든 멀리 보면 새롭고 더 큰 도약을 위한 발판일 수 있다. 그러나 시행착오에는 반드시 원인과 교훈을 찾아야 한다. 식상하고 뻔한 이야기이지만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는 ‘경쟁’으로 움직인다. 많은 사람들이 그 경쟁에서 이기는 길을 이야기하지만 이기는 길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절제의 정신이다.

자본주의란 자유계약과 경쟁을 본질로 삼는다지만 그것이 자본주의 사회나 정치의 작동을 전부 좌우하지는 않는다. 아마도 무한경쟁의 무대에서 내가 저 사업 아이템을 선점하지 않으면 경쟁 상대가 그를 차지하여 나의 존립과 번영을 위협할 것이라는 압박감에 많은 기업들이 과도하게 경쟁에 몰입할 것이다. 물론 상황에 따라 그런 판단이 미래의 운명을 치명적으로 좌우할 경우도 있다. 노키아나 코닥, 일본 전자산업들의 퇴조가 그런 기술적 가치의 판단에 둔감했던 결과이기도 했다. 그러나 동네상권을 치고 들어가는 먹잇감의 선점 같은 것은 적어도 절제하고 자제하는 ‘원칙’을 갖는 것이 진짜 일류 기업가의 지혜요 지략이 아닐까.

유영국 울산과학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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