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범상의 世事雜談(50)]등산(登山)보다 하산(下山)이 중요하다
상태바
[윤범상의 世事雜談(50)]등산(登山)보다 하산(下山)이 중요하다
  • 경상일보
  • 승인 2021.09.24 00:1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윤범상 울산대 명예교수·음악이론가

우리에게 친숙한 자연현상을 설명하는 물리학이론 중에 포텐셜이론이란 게 있다. 포텐셜(potential)이란 단어를 인간적으로 표현하면 잠재력이라고나 해야 할까. 우리가 사는 지구상에서의 포텐셜, 즉 중력포텐셜(또는 위치에너지)을 예로 들어보자. 포텐셜이론은 몇 가지 중요한 사실을 말해준다.

첫째, 물체가 무겁고 높은 곳에 있을수록 포텐셜이 크다. 예를 들어 높은 곳일수록, 그곳의 물이 많을수록 그 물이 가지는 포텐셜은 크다. 포텐셜이 크다는 것은 상태가 불안정하다는 것과 동격이며, 불안정성이 크다는 것은 좋은 일을 할, 또는 나쁜 일을 저지를 잠재력이 크다는 뜻이다.

둘째, 포텐셜은 항상 낮은 레벨(level)에 있고 싶어 하는 속성을 갖는다. 세상만사는 항상 안정 상태를 향하기 마련이란 말과 같다. 물이 아래로 흐르고, 돌덩어리도 아래로 구르며, 연필도 세우면 쓰러지고, 사람도 서있는 것보다 앉아 있는 것, 앉아있는 것보다 누워있는 것이 편한 사실도 모두 포텐셜이론이 설명한다.

셋째, 포텐셜이 낮은 레벨로 이동할 때 그 경로는 항상 최단거리, 직선거리를 택한다. 산꼭대기에서 물을 쏟으면 그 물은 완만한 경사면을 외면하고 가능한 폭포처럼 수직낙하하기를 택한다. 서 있다가 누울 때도 옆방으로 건너가 눕기보다 우리 몸은 그 자리에서 폭삭 쓰러져 눕기를 원하는 것과 같다.

포텐셜이론에서 말하는 이러한 자연이치에 조금이라도 반(反)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별도의 노력과 에너지를 들여 저항해야 한다. 낮은 곳에 있고 싶어 하는 물을 산 위로 실어 올려 포텐셜을 키우거나, 산위에 올려놓은 물이 낮은 곳으로 흐르려는 성질을 막고 변화시키거나, 수직 낙하하고자 하는 물의 흐름방향을 바꾸려면 포텐셜이론에 역행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이론이 말해주듯이 가장 안정된 최저 포텐셜레벨로 급락하는 것이 자연이치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성공하기를 희망한다. 가능한 많은 물을 가능한 더 높은 곳으로 옮길수록 더 큰 성공이라고 말할 수 있으려나. 어떤 사람은 작은 양의 물을 이고 그리 높지 않은 곳까지 쉽게 오르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많은 양의 물을 이고 험하고 힘든 길을 따라 매우 높은 곳까지 오르기도 한다. 아무튼 그리하여 산위에 올라 포텐셜 즉 잠재력을 한껏 키운 상태를 성공이라고 불러 잘못 없으렷다. 물을 지고 산 정상에 오르면 ‘성공했다!’인 것이다. 성공의 크기, 즉 최대 포텐셜의 크기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한편 우리는 성공 못지않게 행복하기를 희망한다. 성공이 곧 행복을 의미하지 않음은 말해 무엇 할까. 앞서 설명한대로 성공이란 극대화된 불안이다. 물을 이고 등정에 성공한 후, 그 성공을 인생의 최종목표로 착각하거나 또는 성공했다는 사실에 심취한 나머지 그만 물동이를 놓아버리면 그 물은 쓸모없이 폭포처럼 최단거리를 따라 흘러내리게 된다. 물을 애타게 기다리는 산등성이 집들에 급수(給水)도 못하고, 등성이에 쌓인 오폐물 청소도 못하고 말이다. 그 물은 간단히 안정 상태에 도달하지만 허무하게도 아무런 보람 없이 종말을 맞게 되는 것이다. 행복은 보람에서 오는 법, 성공이 행복으로 이어지지 못한 것이다.

아무리 힘든 과정을 겪고 권력의 산을 올라올라 정상에 서더라도, 그동안 얻은 포텐셜의 크기에 취해 끈을 놓아 독재의 폭포수를 흘러내리게 한다면 자신은 불안을 떨치고 순간적으로 안정 상태에 도달할지는 모르지만 산자락사람들에게 베풀어 얻는 보람 즉 진정한 행복을 얻을 수는 없는 것이다. 아무리 부(富)를 축적하여 성공했다 하더라도 이를 보람과 행복에 연결하려면 돈을 번 이후의 노력이 더욱 필요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미국의 예를 들지 않더라도, 최근 들어 카카오, 배달의 민족 등 우리나라의 성공한 신예 기업총수들이 줄줄이 거액의 기부를 약속하는 것도 포텐셜이론에 반하는 성공-보람-행복의 법칙을 간파한 때문 아닐까. 얼마만큼의 물을 지고 얼마만큼 높은 산을 오르는 것이 나에게 적합한가 하는 성공의 문제도 중요하지만, 산에 오른 후 어떤 방향으로 어떻게 그 물을 흘러 내려야 하는가 하는 보람과 행복의 문제는 그래서 더욱 중요한 것이다. 우리는 평생 포텐셜이론을 상대로 저항하며 살고 있는 것이다.

윤범상 울산대 명예교수·음악이론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
  • 울산 곳곳 버려진 차량에 예산·행정 낭비
  • 확 풀린 GB규제…울산 수혜 기대감
  • 궂은 날씨에도 울산 곳곳 꽃놀이 인파
  • [송은숙 시인의 월요시담(詩談)]복효근 ‘목련 후기(後記)’
  • [기고]울산의 랜드마크!
  • 이재명 대표에서 달려든 남성, 사복경찰에게 제압당해